[오늘과 내일/정원수]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해체, 고민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1-03-29 03:00수정 2021-03-2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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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 남용 첫 유죄 판결로 진성 회원 73명 공개
인사와 판결 등의 오해 부르고, 법원 분열의 진앙
정원수 사회부장
“오탈자 등 마지막으로 확인할 부분이 있어 오늘 중으로는 판결서를 등록하기 어렵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에게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선고 당일인 23일 이런 이유로 판결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6번 연속 무죄 선고 뒤 첫 유죄가 나온 것이어서 그다음 날 법원 내부망 등록 이후 법관들이 판결서를 찾아 읽었다.

그런데 A4용지 458쪽 분량의 판결서와 154쪽 분량의 별지 등 총 612쪽으로 구성된 문서를 놓고 법원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법원행정처 등은 일선 법관에게 지적(指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생경한 논리에 동료 법관들은 가장 먼저 놀랐다. “헌법에 재판 독립이 명기되어 있는데, 위험한 판결이다” “법을 창조했다”는 불만이 나왔다.

특히 별지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법연구회) 명단이 그대로 실려 논란이 커지고 있다. 거기엔 2017년 2월 당시 인권법연구회 회원 101명의 이름과 직급, 법원 내 소속 기관, 인권법연구회 탈퇴 및 유지 여부 등이 적혀 있다. 101명 중 73명은 기존에 가입한 다른 연구회를 탈퇴하고 인권법연구회 자격을 유지했고, 28명은 인권법연구회를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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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과 김기영 헌법재판관, 이동연 고양지원장, 이성복 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73명의 명단에 있었다. 이 전 실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윤 부장판사의 이례적인 서울중앙지법 같은 재판부 4년 유임 결정에 관여한 성지용 서울중앙지법원장도 포함됐다.

법관들은 “다른 연구회를 탈퇴하면서까지 인권법연구회에 잔류했던 진성(眞性) 회원의 명단이 처음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직에 기용된 법관들의 인사 배경이 궁금했는데, 이번에 의문이 풀렸다”고 말하는 법관들도 있다. 명단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법관 대다수가 판결서를 구해 해당 명단을 확인했다고 한다. 퇴직한 법관들은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법원 관련 업무를 하는 로펌이나 기업도 ‘실세 법관’ 명단을 구하려는 촌극이 빚어졌다.

인권법연구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한 달 전인 2011년 8월 세계인권법과 북한 인권 문제 연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사법 정책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2017년 2월 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회원들이 피해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 취임을 전후해 이들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 검찰 수사 요구, 재판 관련 업무까지 주도하면서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직접 반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법관 인사와 재판의 편향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내부 분열의 진앙으로 이 모임이 지목되고 있다. 로마법을 공부한 전직 대법관의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지금의 왕이 노예가 되고, 노예가 왕이 되어야 정의가 실현되는가. 그것은 또 다른 부정의의 세계를 창출하는 것 아닌가.’ 인권법연구회는 해체를 고민할 때다. 김 대법원장이 재임 중인 지금이 최적의 시기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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