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만4000명 조사해 7명 추가 적발”… 불신만 키운 셀프 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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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을 조사 중인 정부합동조사단이 어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LH 직원과 국토교통부 공무원 등 1만4000여 명을 조사했는데 당초 의혹이 제기된 13명을 포함해 20명의 의심 사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총리실 주도로 여러 부처와 경찰이 일주일을 조사한 결과가 추가로 7명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야당이 확인한 의심 거래만 100건을 훌쩍 넘는 상황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의혹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이번 조사는 3기 신도시와 과천지구 장상지구 등 수도권 8곳을 대상으로 토지 소유자와 조사 대상자의 명단을 대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제성이 없어 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받아야만 조사할 수 있었다. 실제 LH 직원 12명은 개인정보 이용을 거부했고 지금도 조사단이 동의를 요청 중이라고 한다. 부실 조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직원 가족과 지자체 공무원 등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1차 조사 방식대로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의원 부인과 국회의원의 수상한 토지 거래가 확인됐고, 지방까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땅 소유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LH 퇴직자와 현직이 법인을 세워 투기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태다.

정세균 총리는 직원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에 대해서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가 조사를 맡는다고 밝혔다. 문제는 조사 방식이다. 서류 대조에 그칠 게 아니라 노른자위 땅과 돈의 흐름을 철저히 추적해야 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를 제안했고 국민의힘 측도 동의했다. 지역 개발 인허가와 밀접한 지자체 의원도 정부 조사 대상에서 빠질 이유가 없다.

정 총리는 LH 신뢰가 회복 불능 상태라며 “이런 기관이 필요한가”라는 발언까지 하면서도 공공 주도 주택 공급은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했다. LH는 공공 주도 정책의 핵심 기관이다. LH에 공공 주도 공급을 계속 맡긴다면 어떻게 주민 동의를 얻어낼지, LH 이외에 대안이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번 투기 의혹은 공공 분야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자칫 LH 직원 일부와 하위직 공무원들을 적발하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정부 정책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을 수 있다. 정부는 이날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런 의지가 말잔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2차 조사부터 수사 능력을 총동원해 투기 세력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lh#불신#셀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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