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차명거래는 조사 안해… 투기 의혹 줄잇는 세종도 빠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신도시 투기 조사 결과]“조사 대상-지역 확대하라” 여론

“차명거래 등 수면 아래의 거래를 조사하지 않은 채 ‘꼬리 자르기’식 결과를 내놓은 것 아닙니까?”(이종익 남양주 왕숙지구 주민대책위원장)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일주일간의 투기 의혹 조사에서 투기 의심자 20명을 확인했다는 정부 발표에 신도시 주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투기는 형제자매나 지인 등을 통한 차명거래가 대부분인데 본인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LH 투기 의혹을 처음 폭로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정부 발표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정리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 ‘빙산의 일각’ 20명만 확인

합동조사단이 투기 의심자로 분류한 LH 직원 20명 중 13명은 이미 참여연대와 민변이 투기 의혹이 있다고 지목한 사람들이다. 새로 찾아낸 사례는 7명이 전부다. 4일부터 남양주 왕숙, 광명·시흥, 인천계양 등 3기 신도시 6곳과 과천 등 대규모 택지 2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지만 실명으로 투기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초 한계가 있는 조사였던 셈이다.

과거 1, 2기 신도시 관련 수사 당시 검찰은 직계존비속뿐 아니라 친인척과 지인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수사를 했다. 그 결과 투기 사범 1만3000여 명을 적발했다. 반면 이번 조사에선 본인만 포함됐고 향후 조사도 부모, 자녀 등 직계존비속과 배우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장인 장모, 시부모, 이모, 고모, 지인 등을 통한 차명거래나 법인을 통한 거래도 현재로선 조사 대상이 아니다. 민변이 LH와 국토부 직원 명단을 3기 신도시의 토지 거래 명세와 비교해 본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조사 대상 지역이 3기 신도시와 과천, 안산장상지구에 국한됐다는 점 때문에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신도시 인접 지역과 수도권 외 지방까지 조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가 지정한 전국 공공택지지구와 세종시 등 가격 급등지에 대한 조사와 수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하남 교산지구에 농지를 갖고 있는 한 주민은 “나중에 조사해도 되는 실명 거래를 조사하느라 일주일이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 LH 직원과 지인 22명 공동 매입

이번 정부 발표에서 새로 투기 의혹이 드러난 7명은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하남 교산, 과천 등 신도시 예정지 4곳에서 토지를 샀다.

조사 결과 전체 투기 의심자(20명) 가운데 6명은 2필지 이상의 토지를 매입했고 이 가운데 1명은 8개 필지를 사들였다. LH 직원과 지인이 공동으로 땅을 사기도 했다. 특히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땅 1필지 매입에는 LH 직원 4명을 포함한 22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투기 의심자들은 해당 토지가 신도시나 택지지구로 지정되기 2년 전부터 매입에 나서 지구 지정 공고일 6개월 전까지 모두 19개 필지를 사들였다.

이 때문에 투기 의심 행위가 3기 신도시 전반에 퍼져 있을 뿐 아니라 LH 전·현직 직원과 지인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토지 매입에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합조단은 투기 의심자로 지목된 LH 직원 20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78명으로 구성된 ‘부동산 투기사업 특별수사대’를 편성해 광명·시흥 3기 신도시뿐 아니라 안산장상, 과천 등 신도시 주변의 토지 거래, 인접지역 토지 거래명세 등을 분석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투기 혐의자를 찾아내려면 향후 조사와 수사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직자라면 누구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도 이미 공무원 재산공개 대상으로 감시 대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인을 통한 차명거래, 정보를 알려주고 대가를 받는 행위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지금 같은 전수조사 방식으로는 변죽만 울릴 뿐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iamsam@donga.com·정순구·이경진 기자

#가족#차명거래#투기#세종#신도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