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위협하는 인종주의 美 ‘기회의 창’ 유지될까[광화문에서/이정은]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0-10-26 03:00수정 2020-10-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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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기대할 게 이제 더는 없는 것 같아요…. 한국에 가고 싶어요.”

햇살 좋은 워싱턴의 가을날, 오랜만에 식사를 함께 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한인 1.5세대인 30대 여성 A 씨는 미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이름 있는 정책연구소에 다니고 있었다. 늘 넘치는 자신감이 매력이었던 그가 이렇게 의기소침해지다니. “백인이 아니면 위로 올라갈수록 기회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며 “요즘 뉴스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고 했다.

워싱턴의 중견 로펌에 다니는 또 다른 한국계 미국인 B 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40대 초반인 그는 “나는 변호사로 미국에서 성공했지만 애들은 커서 미국에 살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색하고 말했다. 그는 2017년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게가 이유 없이 습격을 당했던 공포의 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유색인종들이 받는 차별과 인종주의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며 “우리가 알던 포용과 기회의 미국은 없어졌다”고 했다. 중국계 의뢰인이 많은 그가 느끼는 문제의식은 남달라 보였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은 극심한 사회 분열, 양극화와 함께 인종주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다시 불거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우월주의 논란을 놓고도 시끄럽다.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는 주로 흑인을 향하고 있지만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연일 ‘중국 때리기’를 지속하면서 중국인을 넘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높아졌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단체인 ‘STOP AAPI HATE’에 따르면 올해 3월 이후 인종주의와 관련된 폭언과 공격 등으로 피해를 본 사례는 47개 주에서 2700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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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의 취업과 교육 기회가 줄어들거나 입국이 까다로워진다고 느끼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유학생과 언론인은 물론 전문직 취업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미국의 대표적 명문고인 버지니아주 토머스제퍼슨(TJ)과학고가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추첨제로 바꾼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다. 아시아계 학생이 70%에 이르는 것에 반발한 백인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인종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대선 캠페인이 가열되면서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편 가르기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시도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서는 우생학을 연상시키는 듯한 자극적인 표현과 발언들까지 튀어나왔다.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패배한 쪽의 지지자들이 과격한 시위와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언론이 ‘내전(civil war)’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미국인들의 총기와 탄약 구매가 기록적으로 늘어난 것은 이를 방증한다. 이민자들이나 유색인종은 상대적으로 쉽게 표적이 될 수 있다.

어느새 깊어진 미국 사회의 각박함과 편협함은 대선이 끝나더라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거창한 성공을 거두는 ‘아메리칸 드림’은커녕 능력에 따른 공평한 기회조차 앞으로는 얻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미국 사회를 더 냉정하게 보고 단단한 각오로 움직여야 할 때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아시아계#인종주의#기회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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