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에도 국경이 있나요?[카버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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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한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13년 동안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고 했다. 아직까지 백 프로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 다 됐다”라는 칭찬을 받을 때면 그런 내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 물론 말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당히 좋다.

나는 귀화를 하지 않아 법적으로 한국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영주권을 얻어서 법적으로는 2% 부족할 뿐 한국 사람과 거의 같다고 생각한다. 그 2% 부족한 부분은 아마 대통령 선거 같은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2%보다 훨씬 더 부족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한국 생활 13년 차에도 여전히 한국 문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있다. 내가 그냥 무심코 다른 사람들도 당연하다고 여기겠지 하는 것들도 나중에 알고 보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을 때도 많다.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몇 주 전 말복에 시청 동기들과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나는 뼈를 깨끗하게 발라먹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나서도 여전히 좀 아쉬워서 수저로 내 그릇의 밑바닥을 저어서 고기가 좀 더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던 차였다. 아쉽게도 남아있는 고기는 없었고 그 대신 위시본(wish bone)을 건져 낼 수 있었다. 이 뼈를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내 옆에 앉아 있던 동기를 향해 한쪽 뼈를 잡고 당기라고 말했다. 동기는 순간 당황하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영국에선 그냥 너무 당연한 행동인데 순간 ‘아차’ 싶었다.

위시본은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의 빗장뼈를 말한다. 영국에서는 ‘Y’자 모양으로 두 갈래로 나뉜 뼈를 두 사람이 한쪽씩 잡고 동시에 잡아당겨 부러뜨린다. 이때 더 긴 쪽을 갖게 되는 사람이 소원을 이룬다는 재밌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동기에게 그렇게 설명해 주고 나서 다시 한 번 요청했더니 어색해하긴 했지만 고맙게도 내 요청을 받아주었고, 결과는 내 동기가 소원 성취의 주인공이 되었다. 난 동기에게 당연히 소원을 빌어보라고 말했는데 동기에게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난 영국 사람도 아닌데 소원을 빌어도 소용없을 거야.”

여기서 우리의 사회적이면서도 철학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나와 동료는 서로가 익숙한 문화에서 어떤 상황에서 소원을 비는지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한국에만 있는 소원, 영국에만 있는 소원, 우리 둘 다 있는 소원 등등이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에서 통하는 소원 성취 방법을 몰라서 완벽한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한국인으로서는 2%가 아니라 사실 3%보다 더 부족한 게 아닐까?’

한번은 재미 삼아 친구와 사주를 보러 갔다. 텐트에 앉아 계시던 분이 출생한 날짜와 시간을 물어보았을 때, 이걸 한국 시간으로 환산해야 내 사주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나에겐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한국 문화를 완벽히 알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13년의 경험과 노력으로도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철학적 성찰을 거쳐 내가 한국 문화에 대해 아직도 배울 게 많이 남아 있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최근엔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을 겪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영국식으로만 소원을 빌고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소원을 비는 방법을 완벽히 터득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곧 추석이 다가온다.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열심히 빌어야겠다. 나쁜 일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폴 카버 영국 출신·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소원#국경#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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