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동산 감독기구, 개인도 금융기관처럼 통제하겠다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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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투기의 시대를 끝내겠다”며 “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필요시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문제를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불법 전매나 집값 담합 등을 단속할 상설기구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금융기관들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 같은 기구를 부동산 분야에 만들겠다는 것인데,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구의 구상에 우려가 앞선다.

정부는 이미 2월 국토교통부 산하에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대응반’을 만들었다. 국토부 인력에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감정원에서 파견된 인력들이 부동산 관련 불법행위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부동산 자금조달 계획서 등을 조사한다. 현재 대응반은 10여 명에 불과한 데다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러 부처에서 파견되다 보니 부처 간, 업무 간 칸막이를 넘지 못해 투기와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실거래 조사를 하다가 증여세 탈루 의혹이 감지되면 사건을 국세청에 다시 배당해 처음부터 검토해야 한다. 별도 기구가 있다면 시장 모니터링과 탈세, 대출규제 위반 등의 조사와 처분을 일괄적으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 간 거래가 주를 이루는 부동산 시장을 낱낱이 감시하는 기구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다. 세계 어느 나라든 금융감독기구와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하는 기구는 있지만, 부동산 감독기구는 베네수엘라에 공정가격감독원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사적 거래에 대한 행정권 남용 우려도 있다. 그동안 부동산 실거래 직권 조사 권한은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 사법기관에만 있었으나 정부는 지난해 법을 개정해 국토부에도 조사 권한을 부여했다. 새로 법을 만들어 감독기구를 신설한다면 ‘빅브러더’가 되어 사적 자치와 시장경제에 과도하게 개입할 우려가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의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수십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서울 아파트 값과 전월세 가격이 뛰었다. 더 잘살고 싶고 더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도덕적 신념이 강할수록 정책은 실패한다. 부동산 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 정부의 간섭을 더 강화하기보다 시장 반응을 면밀히 살피면서 그동안의 대책이 뭐가 잘못됐는지 돌아볼 때다.
#부동산#감독기구#금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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