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도 평등과 복지를 말해야 한다[동아광장/최종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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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심화 외면해온 보수진영
국민 눈에는 비정한 기득권 집단
진보는 비전 제시해 집권까지 성공
이제라도 방향 바꿔 대안 제시 필요
불평등 심해지면 자유까지 좀먹는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금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적인 여당이 압승했다. 여당의 승리 요인은 그동안 추진한 평등 지향적 정책이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보수는 자유와 시장경제 체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반면에 진보는 평등을 강조한다. 성장의 과실(果實)을 골고루 배분하는 것을 지향한다. 보수는 ‘배고픈 것’ 해결에 중점을 두는 반면 진보는 ‘배 아픈 것’ 해결에 중점을 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1960년대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래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1970, 80년대는 경제성장의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도 커 비교적 모든 계층이 고루 잘살게 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세계화로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가 시작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은 기회가 확대된 반면 정부 보호로 지탱하던 기업은 어려워졌다. 그 결과 기업 간, 계층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됐다. ‘배 아픈’ 문제가 심화됐다.

‘배고픈’ 문제는 그동안 경제성장으로 대부분 해결됐으나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가장 큰 원인은 노인 빈곤이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많은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등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아직도 생존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진보는 경제양극화 심화라는 시대 여건을 활용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현 정부는 평등 증진을 핵심 공약으로 많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노인 및 아동 수당 인상, 재난지원금 지급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보수 계층은 평등과 복지 증진에 너무 소홀했다. 과거 경제개발의 낙수 효과가 크던 시절과 같이 수출이 잘되고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들은 4대강 사업,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 성장을 강조했다. 이들 모두 중요한 국가 과제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의 격차만 확대됐다고 생각하는데 정부는 이를 간과했다.

진보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받을지라도 평등과 복지 증진에 그 나름대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는 진보가 제시하는 대책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하면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동안 보수는 규제 완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작은 정부 등을 강조해 국민이 원하는 평등과 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인정도 없는 기득권 집단으로 비쳤다.

이제부터 보수는 현재 시대적 과제인 사회안전망 확대, 양극화 해소, 사회적 이동성 확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주거비 안정은 생계 안정과 저출산 대책의 핵심 과제다. 공공주택, 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도로 건설보다 주거비 안정이 더 시급하다. 또 공교육을 충실화해 사교육비를 줄여야 한다. 사교육비 부담 경감은 곧 노후 빈곤 대책이다. 가난한 집 자녀도 성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을 증진할 종합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확대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확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정지출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국가부채 증가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복지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이 유지되도록 재정운용을 혁신해야 한다. 복지지출은 필요한 계층에 대한 선택적 지원이 되어야 한다. 비효율적인 세출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공무원 증원은 억제하고 비효율적인 공기업 등은 축소해야 한다. 예컨대 인구 3만 명도 안 되는 군(郡)에 400∼500명의 공무원과 경찰서가 있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유, 시장경제가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양극화가 심화될 경우 포퓰리즘이 득세하여 베네수엘라같이 자유는 실종되고 ‘빈곤과 노예의 국가’가 된다. 따라서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려면 불평등이 확대되지 않고 사회가 통합되어야 한다. 영국 보수당이 300년간 보수의 이념을 유지하고 집권 세력으로 존속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과제들을 유연하게 선제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보수는 이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경제양극화#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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