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래와 통합 대신 과거사 뒤집기로 분열 조장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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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그제 1987년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 테러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원회가 재조사를 벌여 김현희 등 북한 공작원에 의한 공중 폭파사건으로 결론이 난 사건을 다시 조사하자는 취지다. 또 같은 당 이수진 당선자는 2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친일파 무덤을 파내야 한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여당의 과거사 뒤집기 행보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설 최고위원은 재조사 사유로 최근 미얀마 해상에서 KAL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13년 전 조사에선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여력이 작용해 동체 인양이 안 됐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은 당시 친여 성향 조사위원들을 투입해 국정원 내부 기밀자료까지 샅샅이 조사했고 그 결론은 역시 북한 공작원에 의한 테러였다. 이처럼 엄연하게 나온 결론까지 무시한 채 군사정권 탓을 하면서 재조사 운운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가까운 억지 주장이다.

현재 현충원에 안장된 인사들은 대부분 6·25전쟁 등에 기여한 공로가 있어 안장 자격이 취소되지 않는 한 강제 이장이 어렵다. 더욱이 이 당선자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도 파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여당 인사들의 발언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과거 보수 정권의 역사를 송두리째 지우고 싶어 하는 친문 지지층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4·15총선 직후 거여(巨與) 지도부는 소속 당선자들에게 신중한 대응과 절제를 거듭 주문했다. 그런데도 일부 여당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과거사 뒤집기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집권당의 이중적 태도로 비칠 수 있다.

다층적 진실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과거사에 대한 조사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 그룹의 균형 있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지지층만을 염두에 둔 과거사 조사는 불필요한 오해와 분열, 이념 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통합과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기에 여당이 국론 분열의 전면에 나서서야 되겠는가.
#설훈 최고위원#kal 858기 폭파 테러 사건#현충원#과거사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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