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의 만남… 기술 국가전의 신호탄[광화문에서/김현수]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입력 2020-05-19 03:00수정 2020-05-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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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1부 차장
“아시아가 미래자동차의 ‘심장’을 차지하는 걸 미국 유럽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미래차 취재를 하던 중 한 자동차부품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이런 말을 꺼냈다. 내연기관차의 심장인 엔진이 전기차에서는 리튬이온배터리다. 현재 리튬이온배터리 시장은 한국, 일본, 중국이 90% 이상 차지하고 있다. 이 CEO는 “전통의 자동차 강국들은 리튬이온배터리를 넘어선 차세대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단독 회동을 지켜보며 이 대화가 떠올랐다. 한국 재계 1, 2위 기업의 수장이 만나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꼽히는 전고체배터리 연구 현황에 대해 약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삼성이나 현대차나 오찬 시간을 포함한 3시간 만남에 지나친 의미 부여는 어렵다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좀처럼 사업적으로 협력하지 않던 한국의 양대 대표 대기업들이 협력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만큼 한국판 ‘미래차 어벤져스’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왔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면 삼성SDI나 현대차나 외국인 보유 지분이 각각 42.4%, 33.7% 수준이니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져버렸다.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첨단 산업이 국가 간 대항전이 된 것이다. 미래 산업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일자리가 휘둘리니 나라마다 자국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이 ‘제조 2025’ 전략으로 첨단 산업 육성에 나섰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중심 산업 정책을 펴는 것이 대표적이다. 첨단 기술 주도권을 가진 나라가 힘과 부와 일자리를 모두 가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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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차가 논의를 시작한 배터리 시장만 봐도 국가 간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폴란드, 핀란드, 스웨덴 등 7개국 배터리 연구를 위해 32억 유로(약 4조2707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승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은 자체적으로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영국 배터리 연구기관 패러데이 인스티튜트도 “미래에는 배터리 공장이 있는 곳으로 자동차 산업이 옮겨갈 것이다. 손놓고 있다간 최악의 경우 영국 내 일자리 17만 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테슬라는 ‘절친’이던 일본 배터리 업체 파나소닉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자체 기술을 연구 중이고, 일본은 도요타와 파나소닉 연합이라는 막강한 팀을 탄생시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불붙은 첨단 산업 국가 대항전에 부채질까지 하고 있다. 올해 실업률 25%라는 최악의 경제 전망 속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는 미국은 반도체 자급 정책을 내놓고, 중국 화웨이에 연일 공격을 퍼붓고 있다. 총칼만 안 들었지 모두가 전쟁 속에 있다. 한국 재계 1, 2위 기업의 만남 소식이 반갑게 들렸던 이유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삼성전자#현대차그룹#첨단 산업 국가 대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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