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리크루팅 평가보고서’[여의도 25시/최우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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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왼쪽 사진)과 자유한국당은 총선기획단을 출범시켜 공천 기준과 배제 기준 등을 정하는 등 본격적인 21대 총선 ‘리크루팅’ 기획 작업에 들어갔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더불어민주당(왼쪽 사진)과 자유한국당은 총선기획단을 출범시켜 공천 기준과 배제 기준 등을 정하는 등 본격적인 21대 총선 ‘리크루팅’ 기획 작업에 들어갔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최우열 정치부 기자
최우열 정치부 기자
어느 조직이나 인재 충원, 즉 리크루팅 시즌이 가까워 오면 지난번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되짚어 보고 선발의 기준을 재설정하기 마련이다. 정치권 역시 21대 총선이 코앞에 다가오니 지난 20대 총선 공천과 이때 충원된 여야 의원들에 대한 평가가 적나라하게 돌고 있다.

“자유한국당 20대 초선들은 고관(高官) 출신만 많고 더불어민주당 초선들에 비해 전투력·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지난 4년 내내 정치권의 ‘명제’처럼 나돌았다. ‘전투력과 경쟁력’ 같은 정성평가 부문은 일단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고, 정량평가가 가능한 ‘스펙 부문’만 분석해 봤다.

‘21 대 2’.

정부 부처의 장차관급이나 처장·청장급의 기관장, 기초단체장 이상을 지낸 인사는 한국당 초선 44명 중 21명이었다. 민주당 초선 66명 중에는 2명뿐이었다. 중앙부처의 장차관급,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만 7명이고 지방경찰·검찰청장, ○○청장, ××처장 등 한국당에는 발에 치이는 게 ‘장(長)’들이다. 비율로 따지면 한국당은 48%가 ‘고관급’으로 리크루팅됐고, 민주당은 3%에 그쳤다.

고위 공무원급, 기업 임원급까지 범위를 넓히면 한국당 초선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 ‘서류전형’ 결과만 보면 한국당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것이다. 민주당 초선은 시민단체나 국회의원 보좌진, 당 사무처 출신. 법조인이라도 일찌감치 사표를 쓰고 나온 평검사나 처음부터 개업한 변호사, 관료라도 과장급 이하 출신이 상당수다.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의원과 안산시장을 지낸 김철민 의원 정도가 민주당에선 예외일 정도다. 이렇게 양당의 초선들 이름을 쭉 나열해 보면 20대 국회가 시작하기 전 한국당 의원들에 비해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고(高)스펙 중심의 리크루팅이 지난 4년 동안 조직 성과로 제대로 반영이 됐는지는 미지수다.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민주당 의원들은 (서로 나가려고) 줄을 서 있고 한국당 의원들은 섭외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는 한국당 초선들도 스스로가 실토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 전투와 투쟁과 폭로 등 모든 정치의 도구는 언어라는 점에서 이런 세평은 20대 한국당 리크루팅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대목이다. ‘실무평가’ 항목이 한국당 리크루팅엔 아예 생략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민주당의 리크루팅이 절대선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평가는 늘 상대적인 것이고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따라 바람직한 의원상(像)은 늘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당에선 젊은 인재 찾기가 한창이다. 당 총선기획단에서 청년·여성 가산점을 지난 총선 때보다 더 주겠다면서 연일 새로운 공천 룰을 발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초호화 스펙에 매몰됐던 지난 리크루팅과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늘 ‘하늘의 별’ 따듯 인재를 찾다 보니 별을 찾기도 힘들고 애써 찾은 별이라도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한 핵심 당직자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 탄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지 괜찮은 인재는 여전히 한국당행을 주저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다 보니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를 둘러싼 ‘영입 세습’ ‘재활용 영입’ 파동과 박찬주 전 육군 대장 논란과 같은 인재 영입 사고가 터진다.

다시 20대 총선 여야 리크루팅 성적표를 꺼내 보자. 이 시대는 ‘고관형’이 아닌 ‘실무형’ 정치인을 원한다는 것과 함께 20대 의원들을 총괄 평가해야 하는 지금 어느 쪽의 리크루팅이 성공적이었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가까운 곳부터 찬찬히 돌아보면 관직이 높지 않더라도 각 분야의 실무에 정통하면서도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젊은 인재, 이미 각 당을 위해 일하고 있는 평균 나이 40세 안팎의 젊은 보좌진들과 당 사무처 직원들 등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정치를 고민해 온 사람들도 당 주변에 가득하다. 하늘의 별만 볼 일도 아니다.

시대의 가치를 담은 리크루팅 철학이 없으면, 과거처럼 청년인재는 소모품이 되고 한국의 보수정당은 초호화 고스펙 인사들이 가득한 공룡 같은 ‘육법당(陸法黨)’으로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우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20대 총선#리크루팅#자유한국당#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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