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심은 ‘정윤회 문건’ 기밀누출만 有罪로 판결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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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는 어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관천 경정에 대해선 유출 문건 중 ‘정윤회 문건’에 대해서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인정하고,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비록 1심이긴 하지만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번 사건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과 함께 청와대에서 빼돌린 17건의 문건들이 대통령기록물인지,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에게 전달한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하는지가 핵심이었다. 재판부는 청와대 문건들이 “원본이 아닌 출력본 또는 복사본이므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비밀누설 여부에 대해서도 공무상 비밀은 맞지만 박 회장에게 주의가 필요하다고 통보하는 취지의 직무수행이어서 불법 행위가 아닌 것으로 봤다.

다만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 씨가 2013년 말 당시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을 만나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 시기 등을 논했다는 ‘정윤회 문건’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세계일보 보도로 불거진 이 문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찌라시 수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엄벌을 강조한 바 있다. 검찰도 정 씨와 이 비서관만을 조사해 문건 내용이 허위라며 이들의 국정 개입 혐의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번에 재판부는 이 문건만 조 전 비서관의 지시 없이 박 경정이 독자적으로 유출해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며 유죄라고 판결했다.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대통령비서실의 감찰 기능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은 “원본이 아니면 청와대 내부 문건을 마구 빼돌려도 된다는 것이냐”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번 판결과는 무관하지만 ‘정윤회 문건’을 계기로 극명하게 노출된 청와대 내부의 기강 해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금 청와대에 ‘찌라시 수준의 문건’은 완전히 사라졌는지, 내부의 권력 암투는 정리된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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