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日아베 편에 선 미국, 한국의 외교실패 참담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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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일본군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정부에서 아시아 태평양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당국자다. 아베가 인신매매의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일본 정부와 군의 책임을 교묘히 은폐했는데도 6일 미 핵심인사가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 학대와 인신매매 방지에 관한 미일 공통의 대처는 과거를 인정함으로써 한층 강화된다”며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아베가 8월 발표할 전후 70주년 ‘아베 담화’와 관련해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한 역대 정권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러셀 차관보는 “매우 건설적이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인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통절한 반성’ 등 키워드가 없어도 괜찮다는 의미다. 1995년 일본 식민지배를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최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건 말의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것과는 동떨어진 평가다.

29일로 예정된 아베의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과 8월의 담화는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을 맞는 한일관계의 변곡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가 미국의 용인 아래 전쟁 책임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물타기’ 연설에 그칠 경우 한일의 과거사 청산은 물 건너간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두 차례의 계기가 일본에 하나의 시험대”라며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이 과거 독일 지도자들이 했던 것처럼 분명한 역사인식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컨센서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셀 차관보의 언급대로라면 일본은 워싱턴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으나 한국은 컨센서스도 이루지 못했고 외교적 성과도 못 내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부상(浮上)에 맞서기 위해 이달 말경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등 한몸 같은 동맹관계를 다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무라야마 담화 수정 정도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최소주의적 접근’을 하고, 위안부 문제도 과거사 왜곡이라기보다 ‘인권 문제’로 본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만일 한일관계가 미일관계에 지장을 줄 경우 미국이 어느 편에 설지 윤 장관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미관계는 역대 최상”이라고 자부하는 외교부가 ‘국내 외교’에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국익에 소홀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니얼 러셀#위안부#인신매매#아베#긍정적인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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