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至誠이면 感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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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모르는 사람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분은 어색해하면서 자기소개부터 했다. 동아일보에서 나의 글을 즐겨 읽는 애독자인데 통화를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검색한 끝에 나의 근무처를 알아내 어렵사리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 선운사 이야기를 쓰신 적도 있고 해서 고창을 좋아하는 분으로 느껴져 용기를 냈다”고 운을 뗐다.

그분은 전북 고창군청 농업진흥과에 근무하고 있다면서 “혹시 4월에 열릴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구경하시고 글을 쓰신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하게 됐다”는 말도 했다. 말하자면 청보리밭 축제 담당자로서 홍보를 하고 싶은 거였다.

“참 기분 좋은 전화네요.”

답을 기다리던 그분은 나의 반응이 엉뚱했는지 잠시 조용했다.

“4월에 청보리밭 축제에 가게 될지, 간다고 해서 글의 소재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지금 확실한 것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일하시는 공무원을 보니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공무원은 복지부동이라는 선입견이 확 깨지네요.”

사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서너 번은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다녀왔다. 그 덕분에 ‘청보리’가 보리의 한 품종이 아니라 이 축제를 처음 기획한 공무원이 단지 싱그러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 고안한 이름이라는 것도 알았다. 듣기만 해도 초록의 싱싱함이 묻어나는 이름을 지은 공무원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맡은 일에 적극적이고 정성을 다하는 공무원을 대하니 기분이 좋았다.

누구라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나의 사무실 근처 한 음식점 주인은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꼭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한다. 신발을 신고 벗는 한옥이라서 꽤 번거로운 일이련만 내 집에 오신 손님을 항상 정성껏 배웅하는 것이다. 주인의 마음가짐이 그러하니 음식도 정갈하고 종업원도 단정하다. 돈을 주고 밥을 사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손님으로 방문하여 한 끼를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집에 가면 늘 기분이 좋다.

서점에 가면 성공을 위한 처세술 서적이 즐비하지만 굳이 읽지 않아도 우리 조상은 이미 해답을 주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지극정성을 다하면 하늘을 감동시킨다고 했는데 하늘까진 몰라도 적어도 사람의 마음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아니겠는가.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정성’이 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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