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인연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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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이씨와 김씨를 잘 헷갈리는 후배가 있다. 예를 들어 ‘이명숙’을 엉뚱하게 “김명숙 씨!”라고 불러 옆에 있는 나까지 민망하게 만들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이씨를 김씨라고 부르면 성희롱이야”라는 농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얼버무리는데 후배는 실수를 안 하려고 신경을 쓸수록 오히려 실수를 한다며 울상을 짓는다. 이씨 아니면 김씨일 경우에 머피의 법칙처럼 꼭 아닌 쪽을 택하는 것이다.

내가 강원 영월의 국제현대미술관 관장인 조각가 박찬갑 선생과 친해진 것도 실은 우리 편집자가 그분의 성을 잘못 표기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편집자가 제목에서 박찬갑을 ‘반찬갑’이라고 쓴 것이다. 잡지의 배포가 끝나고 나서야 오자를 발견했으니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일수록 빨리 실수를 고백하는 게 상책이어서 얼른 전화를 드렸다.

“괜찮아요.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실수도 있을 수 있지요.”

큰제목에서 이름이 틀려버렸으니 굉장히 속상하련만 대범하게 말씀해 주었다. 그렇다고 편집장인 나까지 괜찮을 수는 없는 일. 재빨리 인쇄소에 전화해보니 제본하고 남은 인쇄물을 맞춰보면 몇 권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잘못된 페이지를 다시 인쇄하게 한 후에 남은 페이지들과 합쳐 제대로 된 잡지 다섯 권을 새로 만들어 보내드렸더니 이번엔 선생님이 감동하셨다.

“세상에, 잡지를 다시 찍어 보내주다니 그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미안해서 어쩌나.”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마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분이 얼마나 배려심이 깊은 분인지 알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인연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낭패를 보곤 한다. 익숙한 정도로 봐서 서너 번은 족히 인사를 나눈 것 같은데 도저히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럴 때 “안녕하세요? 저 누구누구예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 누군지 기억하시겠어요?”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있다.

후배는 지금도 자주 이씨와 김씨를 바꿔 부르고, 나는 여전히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잘 매치시키지 못해 당황하곤 한다. 그러나 이 약점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과 한꺼번에 인사를 나눠서 잘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저 누구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그 순간 이후 꼭 기억하게 된다. 그의 배려가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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