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하나은행 연습체육관에서 최근 만난 ‘맏언니’ 김정은(39)의 말이다. 여자프로농구 만년 하위권 팀으로 통하던 하나은행은 21일 현재 13승 3패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하나은행이 이대로 시즌을 마치면 25년 만에 정규리그 1위에 오르게 된다. 마지막 우승은 사실상 전신인 신세계가 기록한 2001년 여름리그였다.
김정은은 원래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려 했다. 김정은은 우리은행 시절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했고, 2017~2018시즌에는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2024년 12월 2일 경기에서 통산 8142번째 점수를 올리면서 여자프로농구 역대 최다 득점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본인 ‘커리어’만 생각하면 은퇴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규리그 꼴찌(9승 21패)로 시즌을 마친 후배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김정은은 2005~2006시즌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신세계 유니폼을 입었다. 팀 간판으로 활약하다 2016~2017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우리은행으로 떠났다. 그리고 2023~2024시즌을 앞두고 6년 만에 하나은행으로 돌아오면서 “팀을 더 높은 곳에 올려놓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5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던 자신에게 ‘1년 더’를 부탁했다.
현재까지는 성공적이다. 김정은은 “주변에서 우리 팀을 꼴찌 후보로 얕봤던 게 오히려 자극제가 됐다. 이제는 후배들과 함께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게 선수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며 웃었다. 이어 “요즘 코트에서 후배들에게 ‘그 점수 네 것 아니다’라는 말을 가장 자주한다. 우리 팀 선수들은 그동안 쌓아놓은 것이 없다. 한두 번 잘한 결과만 보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며 “나는 ‘좋은 언니’나 ‘좋은 선배’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다만, 지지 않는 팀을 만든 선배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계속해 “선수는 결국 큰 무대에서 뛰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 ‘지키는 맛’을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시즌 ‘식스맨’으로 뛰는 김정은은 경기당 평균 출전 시간(18분 40초)은 팀 내 6위다. 하지만 평균 리바운드 개수는 풀타임을 뛰는 진안(8.88개)과 이이지마 사키(6.06개)에 이어 팀 내 3위(5.13개)다. 김정은은 “리바운드는 몸이 아무리 아파도 포기할 수 없는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즌 하나은행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상범 감독(57)은 “내가 코트 밖에서 ‘한 컷’을 찍는 감독이라면 정은이는 코트 위에서 매 순간 컷을 찍는 감독”이라며 “베테랑이 최선을 다해 뛰어주는 것만으로도 팀의 중심이 잡힌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1일 통산 601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역대 최다 경기 출전 기록 주인공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후배들이 나를 보며 ‘저렇게 아픈 언니도 뛰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한다. 부상이 잦다 보니 코트가 빙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내가 겪었던 숱한 부상 덕에 지금의 내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뛰는 폼이 마음에 들지 않고, 몸동작도 느려져 경기 영상도 잘 찾아보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 덕분에 여기까지 잘 왔다. 딱 3개월만 더 버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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