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DDP가 싫은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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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문화부 차장
이진영 문화부 차장
자하 하디드는 논쟁적인 건축가다. 세계적인 작가지만 스타일이 강해 욕도 많이 먹는다. 중국 베이징 시내의 쇼핑몰 갤럭시 소호(2012년)는 “중국 전통에 대한 사망선고”,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은 “비싸고 역사적 경관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인부들의 죽음에 “난 (설계만 했을 뿐) 책임 없다”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1일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는 그의 논쟁적인 건축물 중 최신작이다. 설계 과정의 온갖 구설을 제외하더라도 “완성도가 놀랍다”는 호평과 “디자인이 뜬금없다”는 반론으로 시끄럽다. 개관 후에도 용도가 뚜렷하지 않은 점은, 그래서 연간 운영비 321억 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걱정이라는 점은 가장 큰 논쟁거리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DDP란 ‘꿈꾸고 만들고 누리는 곳(Dream Design Play)’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디자인과 건축을 둘러싼 논쟁의 장소(Design Discussion Place)’라고 부른다.

DDP가 논쟁적인 근본적 이유는 ‘오세훈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디자인 시설을 지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2006년 7월 당선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슬로건은 ‘디자인 서울’이었고 DDP를 핵심 사업으로 밀어붙였다. 원래 이 자리엔 공원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는 랜드마크 건물을 짓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래서 DDP의 풀네임을 쓰면서 끄트머리에 옹색하게 붙어있는 ‘&파크’를 빼먹는 이들이 많다.

공공 건축물이 한 사람의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다. DDP에 감정이 없는 사람도 오 시장이 싫으면 DDP도 싫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다녀가는 복원된 청계천도 이명박(MB) 전 대통령 때문에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난 MB가 싫다, 청계천은 MB의 프로젝트다, 고로 청계천도 싫다’는 삼단논법이 작용한다. 사람이 바뀌면 사업 내용이 달라지는 폐단도 있다. 오 시장은 DDP를 디자인의 메카라고 했지만 박 시장은 창조지식 공간으로 바꾸라고 했고 완공도 늦어졌다.

DDP가 시민들이 주도하는 사업이었다면 어땠을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을 보면서 생각한다. 용도 폐기된 고가 철로를 하늘공원으로 재생한 이 사업은 시장의 선거공약이 아니었다. 뉴욕 시는 철로를 철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아깝게 여긴 주민들이 하나둘 사람을 모으고,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댄 끝에 뉴욕 시를 설득해 멋진 공원으로 만들어냈다. 10년간 공청회와 기금모금 행사가 수도 없이 열렸다. 아내의 생일 선물로 성금을 보탠 이도 있었다. 기공식에는 1000명이 넘는 이들이 ‘내가 하이라인을 살렸다’는 배지를 달고 참석했다.

DDP가 싫은 사람들은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세금 수천억 원을 제 돈 쓰듯 하더니, 별로 요긴해 보이지 않는 결과물을 내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옛 운동장 터를 어떻게 쓸지 함께 고민하고, 거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우고, 설계안을 뽑은 뒤에도 “세계적인 건축가니 묻지 마”라고 하지 않고 일반인들의 주문 사항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DDP를 제 일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성과주의, 비민주주의, 경직성 같은 온갖 단점을 눈감아 주고라도 관(官) 주도의 추진력이 절실했던 개발시대는 진작 끝났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DDP#건축물#연간 운영비#오세훈#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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