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진환]민영화에 대한 보다 유연한 접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8일 03시 00분


김진환 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교수
김진환 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교수
영국 웨일스대에 유학할 때였다. 영국 정부와 의회, 유엔 등 국제기구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세계적 해운경제학자 리처드 그로스 교수의 항만민영화 강의를 들었다. 항만의 국유화와 민영화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강의였다. 강의 말미에 그로스 교수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어떤 답을 기대했는데 뜻밖이었다.

그만큼 국영산업 민영화는 민감한 사안이다. 항만 관리체제는 국유화, 지방자치화, 공사화 그리고 민영화의 수순을 밟아 오고 있다. 싱가포르 항만의 경우 민영화와 국유화의 이중적 틀 속에서 민간 경영적 운영 및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다.

항만, 철도 그리고 통신 등은 여러모로 국가적 지원을 전제로 하는 기간산업이다. 민간이 모든 사업을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시설투자와 유지보수에 대해선 공공성이 필요하며 기간산업으로서의 사회적 의미가 큰 영역이다. 이 때문에 민영화의 길을 터 준다 해도 정부 지원과 개입이 필수적이다. 하드웨어적 시설은 정부가,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운영은 민간이 하는 식이다.

애덤 스미스는 작은 정부를 주창했다. 국가는 국가 운영에 꼭 필요한 부분, 외교 및 국방, 혹은 경찰 등의 치안유지에만 집중하고 산업적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회주의 색채가 짙었던 영국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정부에 의존했고, 피로감은 누적됐다. 그 결과 경쟁력과 효율성이 떨어졌다. 흔히 말하는 영국병이다.

대처와 메이저의 보수당 정부는 강한 개혁드라이브 일환으로 민영화를 추진했다. 시장과 경쟁을 도입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영국의 철도민영화에 대해서는 이용자와 철도회사, 정부 의견이 상충하고 있다. 민영화가 복잡한 사안임을 입증한다.

영국은 철로 유지보수 영역까지 민영화를 단행하는 바람에 부작용도 생겼다. 개별 철도운영회사마다 신호연결체계가 달라 탈선과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운영회사들의 시설투자는 운임 상승의 원인이 됐다. 이런 지적 때문에 블레어 정부 이후로 철도산업 개선책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노사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는 이면에는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노(勞)는 오너십에 너무 집착하는 반면, 사(社)는 경쟁과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현 체제에서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통해 경쟁과 효율성을 높이는 과감한 구조개혁을 시도해 보았는지, 이게 여의치 않다면 공공재로서 정부가 지원하는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정부는 철도시설이나 투자 그리고 운영체계를 중앙집중적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드웨어적 부문에서 정부의 통합운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고 공공재 관점에서도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한편으로 소프트웨어적 운영회사와 관련해서는 완전한 민영화를 통해 철도서비스의 경쟁 구축과 생산성 향상에 매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의 철도운영회사는 운행노선에 대한 나름의 고객 지향적 서비스를 구축하고 민간적 형태의 기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비록 국영기업일지라도 기업은 ‘시장’에서 움직여야 한다. 민영화의 이행과정에서, 정부는 영국의 교훈을 거울삼아, 철도산업 민영화가 지닌 경쟁과정에서의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대한 위험, 그리고 경쟁으로 인한 운영회사의 파산 시 정치적 위험관리에 대한 복안을 한편으로는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김진환 한국방송통신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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