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할 때는 365일이 쇠털같이 많아 보이지만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그 많은 날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쉬움이 안개처럼 밀려온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데는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걸린다. 그 365일을 12개월로 나눈 것이 1년이다. 한 해가 간 것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왔음을 의미하지만 4년마다 하루를 늘려야 하므로 정확한 제자리는 아니다.
묵은 1년을 보내고 새로운 1년을 맞는 감회가 천문학의 원리처럼 단순할 수만은 없다. 한 해를 보내는 의미는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올해 1월 1일자 동아일보 사설의 등장인물은 가수 싸이와 취임을 앞둔 박근혜 18대 대통령이었다. 뱀띠 가수 싸이는 “칭기즈칸 이래 말(실은 말춤)로 가장 빨리 세계를 제패했다”는 소리를 듣는 월드스타로 떴다. 첫 여성 최고지도자인 박 대통령은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완수해 나갈 것으로 우리는 기대했지만 취임 첫해의 성적표는 기대에 못 미쳤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작년 말 ‘박근혜 정부는 재벌의 지지가 어느 정도 줄겠지만 친(親)기업 정책을 추구할 것이고, 경제성장은 2012년 침체에서 벗어나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느 정도 맞았다. 그래도 서민에겐 언제나 그렇듯 힘겨운 한 해였다. 새해에는 경제의 온기가 윗목까지 퍼지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히트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에 ‘신세대’ ‘X세대’로 주목받은 화려한 청춘이었다. 영상문화와 컴퓨터 세례 속에 개인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재화한 첫 세대지만 대학 졸업 무렵 ‘IMF 사태(외환위기)’가 터졌고, 일부는 ‘하우스푸어’ ‘에듀푸어’를 한탄하는 마흔 전후가 됐다. 한국인의 허리 격인 이들은 전문성과 다양성,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에서 젊은 날의 신세대 그대로다.
올해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20년 뒤엔 어떤 모습으로 2013년을 기억할까. 일자리를 위해 쌓았던 스펙, 수없이 발송했던 이력서 그리고 무응답, 철밥통을 차지한 기득권의 완고한 행진만으로 응답하기에는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 ‘응답하라 2013년’의 콘텐츠는 우리가 함께 그려갈 미래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