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권모]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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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제주 한경면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이란 식물원의 안내 멘트 중 한 대목이다. 정원 가이드는 관람객들에게 분재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이 말을 꺼낸다. 왜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는 것일까.

▷식물은 화분 속에서 뿌리 생장을 계속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화분 속이 뿌리로 꽉 찬다. 화분과 닿는 부분의 뿌리는 갈색으로 변하며 굳어지는데, 이런 뿌리는 물과 양분을 잘 빨아들이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분갈이를 할 때 굳은 뿌리를 낫이나 가위로 깨끗이 잘라낸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언뜻 보면 잔인해 보이는 뿌리 잘라내기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옮겨 심은 식물이 새 뿌리를 내리면서 ‘회춘(回春)’을 하고 수명까지 길어진다.

▷자연 상태의 나무는 주변의 양분이 고갈되거나 뿌리가 노화되면 고사(枯死)한다. 반면 분갈이를 주기적으로 해주는 분재 식물은 자연 상태의 동족보다 훨씬 오래 산다. 관리만 잘 해주면 무제한으로 살 수 있다고 하는 전문가도 있다. 분재의 수명 연장 비법은 인간의 삶에도 시사점을 준다. 낡은 생각을 주기적으로 잘라내야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의 뿌리가 돋는다는 것이다. 오래된 생각과 아집(我執)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가 젊더라도 생각이 늙어갈 수밖에 없다.

▷모든 식물은 자리를 옮긴 후 ‘몸살’을 앓는다. 미세한 뿌리의 조직이 이식 과정에서 상할 수 있고, 뿌리에서 흡수하는 물보다 잎으로 배출되는 수분이 더 많은 탓이다. 숙련된 정원사는 분갈이할 식물의 뿌리를 잘라내면서 가지도 쳐준다. 때론 나무 스스로 잎을 떨어뜨린다. 가지와 잎은 사람으로 치면 ‘기득권’ 또는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이다. 자리를 옮긴 사람은 기득권을 버리고 새 자리가 주는 스트레스를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야 새 뿌리와 가지가 돋아나 또 다른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다. 새로운 출발이 많은 연말연시에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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