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신성일에게 섹스를 許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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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의 한 장면.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의 한 장면.
※ 이 글은 21일자 ‘신성일은 신성일이다’는 제목의 본 칼럼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신성일이 대답했다. “여기(교도소)에 있는 나의 심정이라…. 나는 지금 꽃을 키웁니다. 매일 햇볕에도 내놓고 물도 주고 하면서 말이지. 꽃을 키워요.”

솔직히 말해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무지하게 멋져 보이는 말 같았다. 꽃을 키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성철 스님의 말씀 이후 이렇게 있어 보이는 말은 난생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신성일은 신성일인 것이다. 신성일은 감방에서도 꽃을 키운다!

면회를 마치자 나와 동행했던 정진우 감독이 돌아서는 신성일의 등에 대고 “건강해야 해”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신성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오른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려 인사를 대신하며 마치 영화에서 페이드아웃(화면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장면이 바뀌는 것)이라도 되듯 스르르 사라져갔다.

순간 나는 감명도 받고 화도 치미는 매우 복잡한 감정이 되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복역 중이면서 저렇게 멋진 체해도 되는 거야? 감방에서도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아는가 보지?’

하긴, 그럴 만도 했다. 5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고 120명에 가까운 여배우를 파트너로 ‘갈아 치운’ 그로서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자신을 왕자인 양 착각하는 과대망상을 충분히 가질 법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그가 출소 후 늘어놓은 망언에 가까운 다음 발언들을 나는 애써 이해하려 했다.

“왜 한 여자에게만 사랑을 줘야 해? 아내는 엄앵란 한 명뿐이다. 하지만 애인은 다양하게 있을 수 있으며 바뀔 수도 있다.”

“나처럼 자유롭고 잘 생기고 건강한 남자에게 왜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뉴욕에 애인이 있다.”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고(故) 김영애(아나운서이자 연극배우)다. 엄앵란과 결혼한 후에 만난 김영애가 내 아이를 임신해 낙태했다.”

많은 사람들은 “실성을 했다” “주접이다”면서 신성일을 비난했지만, 의정부교도소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던 그의 뒷모습을 잊지 못하는 나는 ‘주접도 일관되면 철학으로 승화되지 않을까’ ‘임금은 무치(無恥·부끄러움이 없음)란 말이 있듯 신성일도 무치가 아닐까’라는 매우 창의적인 생각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성일이 주연한 ‘야관문: 욕망의 꽃’을 보면서 그가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다. 신성일보다 49세 어린 농염한 여배우가 입에 물을 한껏 머금은 채 신성일의 입에 쭉 밀어 넣어도 주고, 신성일이 “마사지!” 하고 짧게 소리치면 즉각 전신 마사지도 해주고, 신성일의 발톱도 마치 네일 아트 대회에라도 나간 듯 최선을 다해 깎아주고 손질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태리타월로 쓱쓱 등까지 밀어주는 이 젊은 여자의 면전에 대고 “음음. 갈 ‘지(之)’자 말고 위에서 아래로 밀란 말이야!” 하고 노예 부리듯 소리치는 이 할아버지 배우는 도대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여자가 발톱을 깎아주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신성일의 맨발은 무지외반증에 가까울 만큼 앞코가 기형적으로 뾰족했는데, 맨날 그런 구두만 신고 다녔던 그의 화려했던 과거를 증명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야관문’이 흥행에 참패한 이유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신성일의 섹스장면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할아버지 배우와 손녀뻘 여배우의 정사는 젊은 관객을 역겹게 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모르나, 어차피 젊은이들은 신성일 나오는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더라면? 훨씬 더럽고 추잡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진부하게 썼을 것이다. 신성일로 하여금 “네가 지금 내게 마늘을 먹여서 아랫도리 뜨뜻하게 만들어 나 힘들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같은 굴욕적인 대사를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성일이 배슬기에게 섹스를 구걸하는 시추에이션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작가였다면 배슬기가 신성일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일단 섹스를 하도록 했을 것이다. 하루 네 번 섹스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배슬기는 야생마처럼 달려드는 신성일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복수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진 업(業)에 종지부를 찍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을 것이다.

왜냐고? 이유를 묻지 마라. 신성일이지 않은가. 신성일은 섹스를 구걸하지 않는다. 신성일은 섹스를 부탁하지도 않는다. 신성일은 다만 섹스할 뿐이다. 충무로여, 76세 신성일에게 섹스를 허하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신성일#야관문#배슬기#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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