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부용]‘中 한글표준화 작업’ 우리가 적극 참여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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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용 KAIST 한글공학연구소장
신부용 KAIST 한글공학연구소장
중국 정부는 지난달 ‘중국 조선문 정보기술 표준화 공작조’를 공식 출범시켜 한글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기술을 표준화하도록 했다. 이것은 중국이 한글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심에서 하는 일이 아니다. 한국어가 중국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컴퓨터 사용 기술을 표준화하려는 것이다.

영어가 영국만의 언어가 아니듯 한국어는 우리만의 언어가 아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엄연히 중국의 8개 공식 언어 중 하나다. 유럽연합(EU)이 23개의 공식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중국도 국가의 주요 문서는 모두 공식 언어로 기록한다. 얼마 전까지 중국 사람들은 북한식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최근 한국의 문물이 많이 들어와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중국 내 표준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한글은 물론 한국어의 문자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조선어 문자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조선문이라고 한다. 영어는 어디서나 ‘English’라고 부르고 문자는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된다. 최근 한중일 3개국의 학자들이 모여 한국어는 ‘정음’이라 부르고 문자를 지칭할 때는 ‘정음 한글’ 혹은 ‘정음 조선문’이라 쓰도록 합의했다.

중국은 학술 차원에서 3국 공통의 표준화 안을 만들기를 기대했지만 우리의 소극적 태도로 진전을 보지 못해 이번에 국가 기구를 발족시킨 것으로 보인다. 실무 책임을 맡은 현룡운 중국 조선어학회 회장은 북한만이라도 참여시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려는 뜻을 보이고 있다.

‘한글의 종주국인 한국을 제쳐두고 국제 표준화가 가능할까’ 하면서 안이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정음 조선문은 중국의 7개 공식 언어를 표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표기 기능에서 한글보다 앞설 수 있다. 게다가 북한, 몽골, 위구르 등 다른 언어 사용국의 지원을 받을 것이므로 한국만의 반대는 국제 사회에서 호응을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앞선 정보기술과 국제 표준화 작업의 경험을 살려 주도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한글의 세계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북한과의 공통적인 표준을 만듦으로써 통일 한국의 정음을 구축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신부용 KAIST 한글공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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