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로코믹호러 국정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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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은 ‘로코믹호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로맨틱코미디에 귀신이 등장해 호러까지 결합된 장르라는 의미다. 14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완벽한 로코믹호러였다.

기자는 아침 출근길부터 당일 퇴근이 어려움을 예감했었다. 교육담당 기자를 하면서 교육 분야 국정감사를 6년째 지켜보다 보니 한심한 하루가 눈에 선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증인 채택 문제로 쌈박질을 하다 오밤중이 되어서야 생색내기용 질의를 하느라 다음 날 오전 한두 시까지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패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10시 개회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자리를 채운 의원들은 증인 출석 문제를 두고 의사 진행 발언만 거듭하다 시간을 다 날렸다. 오후 2시에 속개한다던 국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유치한 싸움으로 또 한참 늦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이 노트북 전면에 교학사 교과서를 비판하는 A4 용지를 붙이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좌편향 교과서를 비판하는 A4 용지를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흔들며 돌아오는 모습부터 코미디였다. 이를 본 민주당 의원들이 “따라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장면은 어린이 시트콤을 보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을 따지는 본질의가 시작되면서 장르는 갑자기 로맨스물로 바뀌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일방적으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감싸고, 다른 교과서의 문제점을 들춰내기에 급급했다. 사랑하는 교과서를 사수하기에 혈안이 된 모습은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들 정도였다. 8종 교과서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의원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서로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부르면서 “당신” “사과해” “북한 책 이야기 나오니 난리치네”와 같은 폭언을 남발하며 삿대질을 하는 모습은 호러물에 가까웠다.

호통 국감의 대표 주자인 안민석 의원은 오전에 “우리 고함치지 맙시다”라고 말해 좌중의 실소를 자아낸 데 이어 밤 12시가 넘어가자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게 “서남표(전 KAIST 총장) 교육정책이 무엇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코미디인지 호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18대 국회에서 최악의 법안 통과율과 국정감사 4년 연속 파행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불량 상임위라는 오명을 굳혔다. 19대 국회에서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변신했지만 구태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이런 국정감사를 위해 며칠씩 밤을 새운 교육부 공무원들은 국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의원들은 서로 국민의 대표라는 이유로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들은 국민을 존경하기는 하는 걸까. 15일 오전 1시 반, 밤이슬을 맞으며 퇴근하는 공무원들의 지친 뒷모습을 보며 문득 로코믹호러는 무척 슬픈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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