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조성하]파도만 보지 말고 바람을 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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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어느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 그런데 굳이 이런 걸 들추지 않더라도 우린 잘 안다. 갈등이란 게 당시엔 세상을 다 준다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지나고 나면 ‘그럴 때도 있었지’ 하며 쉬이 넘기게 되는 것을.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내가 미국 취재 중 자주 이용하는 항공사다. 저비용항공사(LCC)로 세계 최대 규모에 온라인 매출 역시 미국 최대인데 1967년 설립(텍사스 주 댈러스) 직후 퍼시픽사우스웨스트항공(PSA)을 벤치마킹해 승승장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여승무원이다. 당시 PSA는 ‘긴 다리와 짧은 밤(Long Legs and Short Nights)’이란 선정적인 슬로건 아래 미녀로만 선발한 여승무원을 태워 자사를 홍보했다.

그런데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한술 더 떴다. 긴 다리의 무용수와 고적대원, 치어리더 위주로 여승무원을 선발해 핫팬츠를 입히고 롱부츠를 신겨 기내 서비스를 시켰다. 그리고 이런 미녀를 선발하기 위해 휴 헤프너―월간지 플레이보이와 플레이보이클럽의 설립자 겸 운영자―의 자가용비행기에 근무하던 섹시 스튜어디스의 채용 당시 면접을 보았던 인사까지 데려왔다.

이런 식의 마케팅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다 1992년 스티븐스항공의 마케팅 슬로건을 패러디했다가 곤욕을 치르게 된다. ‘Just Plane Smart’란 것인데 스티븐스항공의 ‘Plane Smart’에서 따온 것이었다. 갈등은 소송으로 비화될 듯이 보였다. 그런데 실제는 정반대였다. 단 하루 만에 깔끔히 해소됐다. 그것도 패자 없이 모두 승자가 되는 윈윈 방식으로.

한 편의 코미디로 보일 듯한 이 기발한 해결책. 그건 스티븐스항공 측이 제안한 두 항공사 회장의 팔씨름이었다. 승부는 삼판양승제로 승자에게 슬로건 사용권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패자는 질 때마다 5000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조건이었다. 이 제안에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한술 더 떠 호응했다. 팔씨름 자체를 마케팅 소재로 활용한 것인데 결투를 앞두고 훈련에 몰입한 회장의 모습을 영상물로 만들어 TV를 통해 방영했다. 위스키가 놓인 팔씨름 테이블 앞에 시가를 물고 여유롭게 앉은 모습이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장소는 댈러스의 스포터토리엄으로 당시 프로레슬링 경기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결과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완패. 그렇지만 패자는 없었다. 스티븐스항공이 사우스웨스트항공에 슬로건의 사용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자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기부금 1만5000달러로 화답했다. 영화 ‘OK목장의 결투’를 연상시켰던 댈러스에서 이 세기적인 팔씨름 결투. 결과적으로 그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소비자의 호감과 관심, 그리고 명성이라는 가치다.

갈등을 오히려 발전의 초석으로 만드는 기적.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그걸 이룬 몇 안 되는 현자(賢者) 중 한 사람이다.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Invictus·‘정복되지 않는’)에 소개됐듯 그는 50년 가까이 지속됐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로 인해 도저히 화합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남아공 내 흑백 갈등을 1995년 럭비월드컵 유치를 통해 풀어냈다. 핵심은 최약체였던 남아공 대표팀 스프링복―백인 위주로 구성―이 결승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온 국민이 피부색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한마음으로 보내준 응원과 지지, 그리고 열정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던 세계 최강의 뉴질랜드 대표팀 올블랙스를 누르고 우승함으로써 마침내 이뤄졌다. 그 순간 남아공에선 흑인과 백인이 서로 끌어안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고 이를 통해 서로가 같은 나라의 한 국민임을 확인했다. 넬슨 만델라가 그토록 외쳐온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운 화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지금 넬슨 만델라와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떠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송전선로 공사를 두고 갈등만 깊어가는 밀양 사태가 너무도 답답하게 다가와서다. 눈앞의 것에 매몰돼서는 이런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 파도만 볼 게 아니라 바람을 봐야 했다는 영화 ‘관상’의 대사가 자꾸 생각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사우스웨스트항공#저비용항공사#마케팅#스티븐스항공#팔씨름#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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