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용]샌프란시스코의 거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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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재는 척도로 인구 대비 동성애자의 비율을 따지는 ‘게이 지수’가 있다. 한 도시의 게이 지수가 높다는 것은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를 상대적으로 잘 포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도시의 구성원들은 다양한 삶의 가치들을 존중하며 최신 기술과 외부 인재에 대한 개방과 관용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미국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1776년 스페인 정착민이 개척한 도시다. 19세기 중반 골드러시로 급성장했지만 1906년 대지진과 화재로 위기를 겪었다. 지금은 새너제이와 실리콘밸리, 오클랜드를 잇는 산업 거점이자 ‘서부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금융 중심지다. 연중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와 서늘한 여름으로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도시의 풍광만큼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 분위기도 독특하다.

▷1950년대 비트 세대의 출현을 알린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표작 ‘아우성’을 낭독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비트 세대 작가와 예술가들은 미국 서부의 경제 중심지이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는 미군을 실어 나르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비트 세대의 반(反)문화는 1960년대 히피 문화로 이어졌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는 백인이 주민의 절반이 채 안 되고 동성애자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15.4%에 이른다. 미국 최초의 게이 공직자, 레즈비언 판사, 트랜스젠더 경찰국장을 배출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도시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망언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은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의 미국 방문이 무산된 배경이 밝혀졌다. 일본 언론은 최근 오사카 시의 자매도시인 샌프란시스코 시가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 시 측이 “시민이 환영하지 않는다”며 방문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여성 인권을 무시하고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는 우익 인사와, 자유 개방 관용을 신봉하는 샌프란시스코 시민은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런데도 들이댔으니 문전박대를 당할 수밖에.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샌프란시스코#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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