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낮 폭탄주와 성폭행, 陸士 기율 무너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0일 03시 00분


고급 장교를 양성하는 군 최고 교육기관인 육군사관학교에서 선배 남자 생도(生徒)가 술에 취한 후배 여자 생도를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대낮에 교내에서다. 명예에 살고 죽는다는 호국 간성의 요람에서 이런 불명예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다니 이만저만한 수치가 아니다. 사관학교의 기강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폭행 사건은 ‘생도의 날’ 축제기간(21∼24일)인 22일 오후 2시에 벌어졌다. 생도들은 지도교수의 주관으로 육사 영내 교정에서 점심식사 중에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돌려 마셨다. 생도생활 예규에 따르면 생도들은 지도교수 등의 승인하에 음주를 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만 해야 하고, 사관생도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생도가 만취해 구토할 정도로 술을 마시도록 방치했다니 무엇보다 지도교수의 책임이 크다. 술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였거나 누가 강권했다면 더 큰 문제다.

4학년 남자 생도가 항거불능 상태인 여자 후배를 자신의 기숙사로 끌고 가 문을 잠그고 몹쓸 짓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누구보다 명예를 중시하고 규율과 절제를 덕목으로 삼아야 할 육사 생도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67년의 육사 역사에 씻지 못할 오점(汚點)이다. 육군은 구체적인 음주 경위와 성폭행의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 책임이 있는 관련자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생도의 개인 일탈로 보아 넘길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흐트러진 육사의 규율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피해 여생도가 성폭행에 이어 또 다른 2차 피해를 당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육사는 여생도가 성폭행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심리치료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울러 여생도의 신원이 노출되거나 무분별한 신상 털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이 여생도가 고급 군인의 꿈을 이루는 데 장애가 돼서도 안 된다.

1998년 여성에게 입학 문을 개방한 이후 육사의 여생도 비율은 10%를 웃돌고 있다.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에선 최근 한 생도가 여생도 샤워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동영상을 찍고 이를 파일에 저장했다가 들통 난 적이 있다. 사관학교는 남녀 생도가 함께 생활하는 만큼 학교 측의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요구된다. 군 당국은 사관학교를 비롯해 군대 내 성추행 및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점검해봐야 한다.
#육군사관학교#성폭행#생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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