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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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구하려면 아무 일에서도 즐거움을 바라지 말라. 모든 것을 가지려면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성취하려면 아무것도 성취하길 바라지 말라.’

성(聖) 요한의 시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야겠다. ‘모든 것을 갖춘 지도자를 뽑으려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2012년 한국 대선에 되새겨야 할 잠언이다.

박근혜 후보의 선거공보물을 펼치면 ‘왜 박근혜인가’가 나온다. 첫 번째는 여성대통령이다. 한 ‘독설녀’는 눈을 부라리며 ‘여성’이 아니라 ‘여왕’이라 했지만 여왕도 여성이니 논외로 치자.

두 번째 박 후보를 선택해야 할 이유로 ‘검증받은 위기극복능력’이 나온다. 아래쪽에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일 먼저 ‘전방은요?’, 얼굴에 칼을 맞는 테러를 당하고도 ‘대전은요?’, 박근혜의 삶 자체가 위기와 극복의 역사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방은요? 대전은요?’에 이어 이번 대선에선 “제가 뭐라 그랬나요?”의 연속이다. “오늘로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얼어붙게 하거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김석기, 이재연’으로 성(姓)전환한 것 정도는 해프닝이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면돌파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면서 관련 판결문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다. ‘인혁당 2개의 판결’로 논란을 자초하며 거의 한 달을 까먹기도 했다. ‘5년 준비’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의 삶 자체가 위기와 극복의 역사라는 말은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면 꼬투리만 잡으려는 반대 진영에 수시로 ‘먹잇감’을 던져주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민심은 또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이번에는 문재인 후보의 선거공보물을 보자. ‘이념보다, 권력보다, 돈보다, 학력보다… (‘○○보다’가 무려 12개나 돼 이하 생략) 사람이 먼저다’라고 써 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구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 문 후보는 왜 안철수 전 후보에게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허락하지 않았을까. 왜 사람(안 전 후보)보다 이념과 권력을 앞세웠을까. 그러고는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 잠수 중인 안 전 후보를 찾느라 쩔쩔맸다.

당내 비노(비노무현)들은 캠프의 곁불도 쬐지 못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짐을 싸 박 후보에게로 떠났으니 그들은 ‘사람이 아니무니다’인 모양이다. 하기야 학생들에게 법을 가르치는 진보 논객 교수가 대선후보 TV토론회 직후 트위터에 ‘박근혜 집권하면 이정희 감옥에 들어갈 것 같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이겨야겠다’라고 적었으니 말 다했다.

수사기관에서는 늘 묵비권을 행사하다 어느새 혀에 모터를 달고 나타난 이정희 후보의 둔갑술에 열광하고, 폭설에 연탄재도 귀히 여겨야 하건만 사람을 연탄재처럼 함부로 걷어차는 곳이 바로 ‘사람이 먼저’인 동네다. 그곳에서 문 후보의 신사다움은 짝짝이 신발처럼 어색해 보인다.

동아일보 조사 결과 매번 투표를 해온 ‘확실투표층’ 중 약 10%인 285만여 명이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했다. 대선후보들이여! 비정규직 노동자, 골목상인 등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하기에 앞서 당장 누구도 선택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의 고통부터 헤아려 주길 바란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대선#박근혜 후보#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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