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71세에 프로야구 현장 복귀… 김응용 한화이글스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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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체력도 생각도 23살밖에 안됐어… 한 100년은 더 감독할 거야”

김응용 한화 감독은 선수나 코치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 말없이 가만히 지켜본다. 선수들은 알아서 열심히 뛴다. 그게 바로 김 감독의 카리스마다. 최근 대전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김 감독은 예전과는 다르게 인자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두 눈은 끊임없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대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응용 한화 감독은 선수나 코치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 말없이 가만히 지켜본다. 선수들은 알아서 열심히 뛴다. 그게 바로 김 감독의 카리스마다. 최근 대전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김 감독은 예전과는 다르게 인자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두 눈은 끊임없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대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전=이헌재 스포츠레저부기자
대전=이헌재 스포츠레저부기자
1990년대 어느 날 해태의 프로야구 중계 도중 ‘방송사고’가 났다. 시커먼 물체가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이다.

알고 보니 이는 당시 해태 사령탑이던 ‘코끼리’ 김응용 감독(71)과 카메라 감독 간의 마찰에서 빚어진 사고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김 감독의 표정을 더 자세히 잡기 위해 카메라를 너무 가까이 들이댄 게 발단이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김 감독은 발을 뻗어 발바닥으로 카메라를 가려 버렸다. 이 장면은 수초 동안 전파를 탔다. 덩치가 커 ‘코끼리’라는 별명을 가진 김 감독은 발도 크다. 신발 사이즈는 무려 300mm. 이른바 김 감독의 ‘카메라 발길질’ 사건이다.

1990년대 초반 올스타전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해태 선수였던 한대화(전 한화 감독)는 경기 중 가벼운 부상을 당해 더그아웃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교체가 확정된 터라 공수 교대를 할 때도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한대화가 교체된 사실을 모르고 있던 김 감독은 이 모습을 보고 “뭐 하고 있나. 빨리 나가라”며 발로 툭툭 한대화를 건드렸다. 중계 카메라는 이때도 김 감독의 모습을 뒤에서 찍고 있었다. 다음 날 몇몇 스포츠신문에는 ‘김응용, 선수 발길질’ 사건이 대서특필됐다.

김 감독은 팬에게 발길질을 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예전에는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 버스까지 걸어가면서 인터뷰를 했다. 이때는 관중이 감독이나 선수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어느 날 김 감독이 한창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몇몇 어린이 팬이 밑에서 김 감독의 옷을 잡아당겼단다. 화면이 얼굴만 비추고 있던 터라 김 감독은 ‘저리 가라’란 뜻으로 발을 휘휘 내저었다. 이튿날 몇몇 신문에는 ‘김응용, 팬에게 발길질’ 기사가 크게 실렸다. ‘코끼리 발길질 3종 세트’의 완결판이었다.

김 감독에 따르면 이는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다. “중학교 때까지 내가 축구선수였다. 그래서 발로 이런저런 표현을 하곤 했다. 공교롭게 그런 모습이 포착됐을 뿐이지 발길질을 한 건 아니다.”

오해건 아니건 김 감독은 이처럼 무서운 이미지다. 코치, 선수들은 김 감독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행여 꼬투리를 잡혀 불호령이라도 들을까 무서워 김 감독을 피해 다녔다.

김 감독은 바로 그런 카리스마를 앞세워 10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프로야구 감독 22시즌 동안 통산 성적은 2653경기에서 1463승 65무 1125패(승률 0.565)다. 최근 몇 년간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던 한화는 팀 재건의 적임자로 ‘승부사’ 김 감독을 선택했다. 2004년 시즌 직후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현장 복귀다.

따가운 가을햇살이 내리쬐던 19일 대전구장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선수들의 타구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는 가운데 김 감독은 거침없이 자신의 포부와 각오를 밝혔다.

○ “영원한 20대, 남자는 힘이다”

―모처럼 현장으로 돌아오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한편으로는 즐겁고 한편으로는 긴장돼. 성적을 내야 되는데, 하∼(한숨). 아직까지 뾰족한 수가 안 나오네. 이기려면 효과적인 훈련밖에 없지 뭐.”

―8년 전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다시는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었는데….

“사장도 해보고(김 감독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 야구단 사장을 맡았다) 이것저것 해봤는데 역시 야구 감독이 제일 매력 있더라고.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40년 넘게 감독, 사장하면서 긴장 상태에서 살았잖아. 그런데 한 1년 쉬니까 오히려 몸살이 나서 죽겠더라고. 감독 스트레스? 이기면 그런 거 없어. 이기면 되지.”

―70대에 감독이 됐는데….

“(말을 끊으며) 뭐? 누가 70대야. 나 아직 스물세 살밖에 안 됐어(웃음). 체력도 그렇고 사고방식도 그래. 남자는 힘이 있으면 되지. 그래도 왜 70대냐고 묻는다면 70대의 희망을 보여 줘야지.”

감독실 테이블 위에는 악력기가 놓여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악력 운동을 하는 듯했다. ‘100’까지 표시되는 악력기는 ‘80’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을 이끈 ‘명장(名將)’이신데 최하위 팀 한화를 어떻게 이끌 생각이신지요.

“명장 소리는 첨 들어보네. 잘 아시다시피 내가 신인급들을 좋아하잖아. 해태 시절부터 2, 3명은 신인을 주전으로 썼어. 장성호 홍현우 정성훈 문희수 신동수 등 고졸 첫해부터 주전이 됐지. 한화에 와서 보니 신인 중 몇 명이 쓸만해. 얘들이 기대만큼 해 주면 강팀 되는 거니 두고 봐야지.”

―기존의 베테랑 선수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네요.

“자기 포지션에 말뚝 박아 놓은 거 아니잖아. 신인들의 합류는 팀에는 활력소가 되는 거야. 신인이 잘하면 한화팬도 좋아해. 해태랑 삼성에서도 다 그렇게 선수 만든 거야.”

―선수 장악력은 정평이 나셨잖아요.

“다 같은 프로인데 장악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자기가 잘하면 자기 연봉 오르지 내 연봉 올라? 나는 나대로 이길 수 있는 선수단 구성하고 경기마다 최선의 라인업 짜면 되는 거야. 이기기 위해 그날그날 좋은 선수 내보내면 돼.”

―가끔 말 안 듣는 선수도 있을 텐데요.

“뭐, 내 말을 안 들어? 어려울 거 없어. 그냥 경기 안 내보내면 돼. 한화에 와서도 그래. 한화는 꼴찌한 팀인데 시즌 중에 많이 던졌다고, 힘들다고 마무리 훈련 안 나오는 애들이 있어. 내가 지금 아무 말 안 하고 두고 보는 거야. 그런 애들 2년 동안 경기 안 내보내면 되는 거야. 그 선수나 나나 2년 있다 같이 끝나는 거지 뭐.”

―예전에는 이기기 위해선 물불을 안 가리셨잖아요. 쓰레기통 집어던지고, 의자 걷어차고, 욕설도 하시고….

“(눈앞의 테이블을 보며 구단 관계자를 향해) 이거 좀 튼튼한 걸로 갖다 놔.(웃음) 아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얼마나 신사인데…. 그런데 가끔 그럴 때 있잖아. 경기에서 7,8점을 뒤지면 선수들이 긴장이 풀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한 번씩 분위기 잡곤 했지.”

―한화에서는 스타일이 좀 달라질 것 같으신가요. ‘알고 보니 부드러운 남자’라는 소문이 돌던데요.

“그러진 않을 거야. 사람이 스타일이 바뀌면 죽는 거야. 내 성격이 어디 가겠어. 나나 선수들이나 프로는 항상 긴장 속에 살아가는 거지. 경쟁이 얼마나 심해. 자기 포지션을 차지하려는 선수들이 10명씩 있잖아. 어떻게 긴장을 풀어.”

이때 동행한 본보 사진부 홍진환 기자가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감독은 “정말 옛날 같으면 ‘내가 영화배우야? 왜 포즈 취하라고 해’라고 난리 쳤을 거야. 한화는 부드러운 팀이라니까 나도 부드러워져야지. 빨리 찍어”라며 포즈를 취했다.

○ “빠르고 강한 한화를 만들겠다”

―감독님 말씀대로 한화는 플레이 스타일이 좀 부드러운 느낌인데요.

“그럼 프로야구 선수 하지 말고 박사학위 받아서 교수 해야지. 프로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야. 지면 죽는 거야. 야구장에서 목숨 걸고 전쟁하는 거야. 점잖게 야구해서 지면 좋아하나? 이겨야 팬들이 좋아하는 거지.”

―해태와 삼성에서는 선 굵은 야구를 하셨는데요. 한화에서는 어떨까요.

“요즘은 빠른 팀이 안 되면 상대를 못 이겨. 예전 같으면 홈런 쳐서 이겼지만 요즘은 미국이든 일본이든 빠른 야구를 해야 돼. 이종범 코치가 빠른 한화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어.”

―김성한 이종범 송진우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 코치들이 많다 보니 코치와 선수가 붙어도 코치가 이길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글쎄, 씨름 하면 이길까 몰라. 해태에서 뛰었던 김성한과 이종범을 데려온 건 근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야. 그 친구들은 선수 시절 악바리였지. 그런 근성을 우리 한화 선수들에게 주입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 선뜻 와 줬으니 고맙지. 목표는 우승이야. 적어도 우승 전력으로 만들 거야.”

―감독 시절 제자였던 선동열(KIA 감독)과의 대결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제지간이지만 이제부터 선의의 경쟁을 할 뿐이야. 그렇게 따지면 양승호 감독(롯데)이나 류중일 감독(삼성)도 관계가 있지. 프로와 프로의 대결에는 승리만 생각하는 거야.”

―(구단 동의를 얻어 해외 진출이 가능한) 류현진의 거취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잘 알다시피 올해 한화는 에이스 류현진이 있어도 제일 약했어. 그런데 기둥마저 빠지면 다 무너지는 거야. 감독으로서는 절실한 상황이지만 구단이 판단할 문제지. 꼴찌나 탈피하고 (외국에) 갔으면 좋겠어.”

―스스로를 ‘복장(福將)’이라고 한 적이 있으신데요.

“실력도 없는데 우승을 많이 했으니 그렇지. 좋은 선수 많이 만난 게 복이 많았던 거지. 한화에도 복을 많이 받을 것 같아.(웃음)”

―끝으로 언제까지 감독을 하고 싶으신가요.

“한 100년은 더 하고 싶어. 감독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어. 난 젊어. 메이저리그에는 80대 감독도 많잖아.”

[채널A 영상] 김응용 “노장은 무슨…나도 신임감독 아니요”

● 김응용의 말말말

▽“어∼. 동렬이도 없고. 어∼. 종범이도 없고….”(1998년 해태 감독 시절, 선동렬에 이어 이종범마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이적해 남은 선수가 없다며.)

▽“동쪽으로 갈 거야.”(해태 감독이던 1999년 말 향후 거취에 대해 선문답식으로 답하며. 1년 뒤인 2000년 11월 그는 광주 연고지의 해태를 떠나 대구 연고의 삼성과 계약했다.)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삼성 사령탑으로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접전 끝에 우승한 뒤 당시 김성근 감독을 평하며. 이후 김성근 감독의 별명은 ‘야신’이 됐다.)

▽“그거 알면 내가 여기서 감독 하고 있겠어? 미국 가서 하지.”(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한 후 패인을 묻는 질문에.)

▽“육지를 호령했으니 하늘도 호령하면 된다.”
(이달 초 한화 감독으로 취임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육지의 제왕인 호랑이(해태 타이거즈)와 사자(삼성 라이온즈)에 이어 독수리(한화 이글스) 사령탑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겠다며.)

대전=이헌재 스포츠레저부기자 uni@donga.com
#김응용#한화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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