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영호]성범죄자 재범 막을 수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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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강력범죄 대책에 구멍이 뚫린 건가. 최근 잇달아 발생하는 흉악범죄를 보고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소위 ‘묻지마 범죄’가 갑자기 늘어나고, 아동을 상대로 하거나 대낮에 일어나는 성폭력 범죄까지 가세하고 있다.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 문제

이와 같은 상황의 악화는 예견된 것이었다. 사회적응에 실패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인터넷에 음란물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성범죄의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성범죄의 발생 자체를 억지하기에는 갈수록 힘이 든다. 관련 기관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에 어처구니없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8월 일어난 ‘중곡동 주부 살해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다. 성범죄 전력자인 범인이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가정집에 들어가 부녀자를 성폭행한 지 열흘 남짓 만에 또 다른 부녀자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것이다. 전자발찌가 무용지물이 된 것도 놀랍지만 1차 범행 후 즉각적인 대응이 늦어져 2차 범행을 막지 못했으니 피해자의 유족에게 평생 한(恨)이 될 일이다.

성범죄는 그 특성상 재범 위험성이 높고 피해자의 신체나 현장 주변에 체액 등의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재범을 못하도록 성범죄 전력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재범을 저지른 경우 DNA자료를 활용해 범인의 신원을 신속하게 특정해 검거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장치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범인은 이미 성범죄 전과자라 DNA자료가 대검에 보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 경찰이 1차 범행 수사 당시 확보한 용의자의 DNA자료에 대한 분석을 지체했기 때문이다. DNA자료 분석을 지체하는 바람에 신원 파악이 늦어진 것은 변명할 길이 없는 결정적인 과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업무 과다로 결과 회신을 제때 받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시급을 요하는 사건은 긴급 감정으로 처리할 수 있지 않은가.

전자발찌 부착자 관리상의 허점도 드러났다. 잡을 때까지 경찰은 범인이 전자발찌 부착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전자발찌 관리를 맡고 있는 법무부가 평소 부착자에 대한 정보를 경찰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 초기 경찰이 정보 공유를 요청했는데도 묵살됐다고 한다. 인권침해 가능성 때문이라지만 그런 중요한 정보의 공유 없이 재범 방지라는 경찰의 범죄 예방 활동이 제대로 될 턱이 있겠는가.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量刑)의 문제점도 따져봐야 한다. 중형 선고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중형의 범죄 발생 억지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중형으로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성범죄에 대한 선고형은 국민 법감정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가벼웠다는 중론이다. 재판 과정에서 합의되거나 고소가 취소되는 사건이 많다 보니,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경우도 많았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 젖어 피해 여성이 입은 상처의 깊이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측면도 있다.

화학적 거세 중지 모아야

일반인의 법감정에서 벗어난 양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안의 다양성, 피고인 환경의 다양성 때문에 선고형의 적정선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무작정 관행을 따르거나 직관에 의존한 적이 있었다고 실토하는 법관도 있다.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정주의로 기울다 들쭉날쭉해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양형기준의 통일조차 외부의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법관들의 생리가 개인적인 편차를 키웠을지도 모른다. 2007년부터 시작된 대법원 양형위원회 주도의 양형기준 정비작업 역시 대체적인 가이드라인 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는 만큼 결국 공동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법관들 스스로 그 괴리를 좁혀 나가야 한다.

입법적 정비도 필요하다. 성폭력범죄의 친고죄(親告罪) 조항도 없애는 쪽으로 검토할 단계가 됐다고 본다. 그동안 친고죄로 묶어둔 것은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범죄 자체를 없던 일로 덮어버리게 함으로써 재범 억지에 장애가 된 측면이 있다. 경찰의 인력 운용도 바뀌어야 한다. 강력범죄의 대응은 경찰의 최우선 책무인 만큼 성범죄에 대한 우선순위가 밀려서는 안 된다. 지능범죄 수사 등을 앞세운 경찰의 위상 높이기에 치중하면 성범죄수사가 소홀해지기 쉽다. 국민의 신체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성범죄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는 일은 멀고도 힘든 여정임이 분명하다. 사회 환경의 변화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이지만 이미 드러난 성범죄 전력자가 재범을 못하도록 확실히 막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접강제에 불과한 전자발찌 채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화학적 거세를 비롯한 치료 프로그램의 도입에도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성범죄#화학적 거세#강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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