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성폭력에 노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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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정성희] ‘나영이’ 주치의 신의진 국회의원

신의진 의원은 새누리당 미인 대변인의 계보를 잇고 있다. 아동 성범죄를 언급할 때 높고 빠른 말투로 강한 자기 확신을 드러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신의진 의원은 새누리당 미인 대변인의 계보를 잇고 있다. 아동 성범죄를 언급할 때 높고 빠른 말투로 강한 자기 확신을 드러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나영이(가명)’ 주치의로 알려진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은 1998년부터 아동 성폭력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다. 2008년부터 아동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아동센터를 통해 연간 500여 명의 환자를 만났다.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이들을 진료하느라 일반 환자를 받지 않았다. 그가 새누리당 비례후보 7번으로 의원 배지를 단 뒤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회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13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신 의원은 “오늘은 정치인이 아닌 의사로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를 하다 국회의원이 되니 어떤가.

“교수의 삶이란 어찌 보면 단조롭다. 의원이 되고 보니 과거에 10년을 떠들어도 안 되던 일이 한 달 만에 해결되기도 하더라. 이외수 작가의 말마따나 국회의원은 ‘하고 싶은 한 가지를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 9가지를 하는 자리’인 것 같다. 내 사명은 ‘이 나라의 싹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아픈 아이, 아픈 부모, 사회 부적응자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아이들의 인권을 소홀히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법과 제도에도 문제가 많지만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부속물로 생각한다. 성폭력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만 잘 지켜도 대한민국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고 본다.”

―나주 성폭행 사건은 끔찍했다.

“나주 케이스는 내가 접했던 수많은 성폭력 사건 가운데 아이의 신체적 손상이 크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 성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진즉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을까 봐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성폭력을 당하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대상이 그 가족이다. 가족이 아이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가, 부모가 아이를 학대했는가, 부모에게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가 등을 알아봐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해줄 능력이 없으면 아이는 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 그래서 아동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는 치료와 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 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성폭력 피해아동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해도 여기에 올 교통비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성폭력의 40%가 친부 의부 친오빠 친척오빠 등 가족에 의한 것이고 가해자의 60∼70%가 피해자가 평소 ‘잘 아는 사람’이란 통계가 있다. 서울 중곡동 주부를 살해한 서진환처럼 남의 집에 들어가 다짜고짜 일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성폭력은 면식범이 많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올바른 성폭력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는데….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고 성범죄 대응 매뉴얼도 만들어졌다. 이번 나주 사건에서 초동수사는 훌륭했다. 훈련받은 여경이 파견됐고 범인 검거도 빨랐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아동은 해바라기아동센터가 지원하게 돼 있는데 상담원의 전문성이 너무 떨어진다. 정부가 센터만 짓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예산 당국은 건물 짓는 데는 돈을 쓰면서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어머니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상담원이 개입할 때는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다. 상담원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도 그러지 못했다. 통계를 보면 성폭력 아동의 10%는 부모가 망상장애 정신분열 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 약 40%의 부모는 우울증 불안장애 성격장애를 갖고 있다. 그래서 피해아동 못지않게 부모의 정신치료가 중요하다.”

여성가족부는 지난주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의료 지원을 확대하고 절차를 개선해 피해자와 가족이 회복될 때까지 치료비를 제공하도록 했다. 연간 500만 원 이상의 의료비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던 절차도 폐지하고 19세 미만 피해자의 부모에게 한정됐던 가족 의료비를 피해자 연령과 상관없이 모든 가족에게 확대했다. 신 의원이 ‘과거에 10년을 떠들어도 안 되던 일이 해결된다’고 했던 것이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아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나.

“성폭력 피해자를 진료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가해자도 만난다. 안양교도소에서 아동을 상대로 세 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도 관여했다. 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아동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 가해자 치료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러다 보니 한 번만 봐도 성폭행범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지경에 이르렀다. 안양교도소에서 성범죄자 지능검사를 했을 때 거의 다 고졸인데도 지필검사를 시행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성범죄자의 지능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인데 특히 언어적 지능이 떨어진다.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들이 성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성범죄를 예방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 중에서도 청소년은 치료 효과가 크다.”

―화학적 거세나 물리적 거세는 어떤가.

“요즘 물리적 거세 법안이 나왔는데 나는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성범죄 치료의 첫 단계는 성충동을 강제로 억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기만’을 벗기는 데서 출발한다. 대다수 성범죄자는 성범죄에 대해 ‘술김에 그랬다’ ‘기억이 안 난다’며 범행을 부인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재범을 막고 치료에 협조할 수도 있다. 성범죄자 가운데는 이도 저도 안 되는 부류가 있다. 20대 여성을 토막살해한 조선족 오원춘이 그런 부류다. 충동을 조절할 최소한의 인지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할 도리밖에 없다. 법원 형량도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현행법상으로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한데 조두순도 12년형에 그쳤다.”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성범죄가 늘어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문제도 증명하려면 사회과학적 연구를 해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 없이 가십거리로 떠들 일은 아니다. 성매매특별법과 성범죄의 상관관계를 보려면 전후 비교가 있어야 하는데 예전의 자료가 없다. 이런 조사는 의학적 테두리 안에서 몇 년에 걸쳐 역학조사처럼 진행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있는데 제대로 된 조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 의원은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를 치료한 의사로서 남자의 건강한 성 발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남자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남성호르몬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가둬놓고 운동도 못 하게 하고 공부만 시킨다. 여기에다 포르노는 홍수처럼 범람하니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의식을 갖고 자랄 수가 없는 환경이다. 신 의원의 해법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포르노를 규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그런 경험을 가족이나 친구와 ‘공유’하게 하되 ‘한계’를 정해 주어야 합니다.” 음란물을 본 경험을 부모에게 고백하거나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말로 풀어버릴 수 있다면 괜찮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 경험을 공유할 가족과 친구가 없을 경우 이는 왜곡된 성 관념으로 자라나 성범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성 충동은 본능이므로 부모나 어른이 야단칠 일이 아니고 통제도 잘 안 되기 때문에 운동이건 예술이건 욕망을 승화시킬 수 있는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은 어떻게 생각하나.

“‘일진’과 같은 범죄꾼에 의한 학교폭력은 20%도 안 될 것이다. 대부분은 마음이 어리고 미성숙한 아이들이 서로 치고받다가 생긴 문제다. 이것을 가해자 피해자로 구분하는 것부터가 애매하다. 먼저 팬 사람이 가해자인가, 많이 팬 사람이 가해자인가. 그런데 이걸 억지로 구분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수많은 학교폭력 가해, 피해 학생을 상담했다. 결론만 말하면 학교폭력은 ‘정신건강의 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학생은 자기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성이 없는 아이들이고, 지속적인 가해자는 사회성도 없고 공격성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양심 없는 부모들이 있다. 학교가 이런 것도 모르고 학교폭력을 해결한다며 가해자 피해자 부모들을 만나게 한다. 반성문 쓰기, 강제 전학,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폭력 기재 같은 조치보다는 두 학생과 가족에 대한 치료가 선행돼야 한다. 막무가내 부모도 전문의가 상담을 하게 되면 대부분 교정된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가해자가 친구들 앞에서 사과하는 현장에 의사가 배석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금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록이 이슈인데 죄질이 나쁜 아이들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학교폭력의 논점이 돼서는 안 된다.”

―왜 이렇게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나.

“가정 해체가 아이들의 뇌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학조사를 하면 분명히 증명될 걸로 확신한다. 엄마 아빠의 부재(不在)로 충격받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내게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급증했다. 이혼하면서 서로 ‘네가 키워라’라고 부모가 아이를 떠밀기 시작한 것도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지금 학교폭력 문제를 일으키는 중학생, 고등학생이다. 요즘 부모들은 성적만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자녀를 경쟁의 도구로 여기며 옆집 아이와 비교한다. 이런 상황에서 괴팍하고 강퍅한 아이들이 만들어진다.”

―무상보육을 어떻게 봐야 하나.

“보육 문제도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길 경우 보육지원금을 주는데 어떤 아기들은 보육시설에서 견디기 힘들다. 개인별로 뇌 발달에 차이가 나는데 이런 걸 무시하고 모두가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도록 유도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것이다. 3세부터는 언어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므로 보육시설에 보내는 것도 괜찮다. 나는 ‘무상’이란 말을 싫어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보육정책에서도 정부가 돈을 주기 시작하니까 부모들이 부모 되는 수고로움을 면제받으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부모가 되는 것은 굉장한 심리적 성숙이 요구되는 일이다.”

신 의원은 연세대 의대 교수 시절 깐깐하다고 소문났다. 아이를 데리고 온 환자 엄마를 울리기로도 유명했다. 정신적으로 아픈 아이의 뒤에는 부모의 과도한 욕망과 잘못된 양육 태도가 자리 잡고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를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자녀교육 관련 서적을 많이 쓴 이유도 틱 장애가 있는 큰아들을 포함한 두 아들을 키우며 느낀 점을 다른 부모와 공유하고 싶어서란다.

[채널A 영상] 신의진 의원 “성범죄자 관리 구멍 드러났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신의진#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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