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가 아내를 죽였다” 대통령은 들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서울 중곡동 30대 주부가 성범죄자 서진환에게 목숨을 빼앗긴 지 3주일여가 지났다. 피살자의 남편 박귀섭 씨는 요즘 잠든 아이들을 두고 새벽부터 일하러 나간다. 그래야 아이들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살해되기 13일 전에도 범인 서진환이 전자발찌를 찬 채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박 씨는 더 허망해했다. 그는 그제 채널A 인터뷰에서 “덜덜덜 떨렸죠. 너무 억울해서…. 그런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질 때마다 (나라가) 참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라고 말했다. ‘허접한 국가, 허접한 정부, 허접한 공권력’이 결국 아내를 죽였다는 개탄으로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귀를 열고 들어야 할 분노이자 절규다.

경찰은 관할구역을 따지고, 전자발찌를 관리하는 보호관찰소는 성범죄가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박 씨는 “(국가 기관끼리) 밥그릇 뺏기기 싫어가지고 공조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 이런 시스템에서 어떻게 연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것인지…”라고 했다. “아 진짜 너무 억울하고… 너무 억울해요”라며 그가 깊게 토한 한숨은 이 나라 서민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친(親)서민 정부’는 다세대주택 2층에 사는 서민 박 씨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11일에는 충북 청주의 경찰지구대로부터 5m 떨어진 원룸에서 20대 여성이 성범죄 전과자에게 피살됐다. 고종석에게 성폭행당한 나주의 A 양(7), 통영의 초등학생 한아름 양(10), 조두순에게 당한 나영이(당시 8세) 등 피해자는 모두 서민의 딸이었다. 자신들의 돈과 힘으로 ‘생활 안보(安保)’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야말로 법과 제도가, 그리고 정부와 경찰이 지켜줘야 할 힘없는 계층이다.

비록 누추할지라도 내 집에 누우면 마음 편하게 자고 깰 수 있는 생활 안보가 돼야 ‘등 따습다’고 할 수 있다. 서민을 ‘배부르게’ 못해 주면서 ‘등 따습게’도 못해 주는 정부가 무슨 낯으로 친서민을 말하는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3월 안양 초등학생 혜진 예슬이 성폭행 살해범이 잡혔을 때 본란은 ‘골목 안 민생치안이 法治(법치)의 ABC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나 경찰은 서민동네의 치안에 소홀한 것으로 모자라 거짓보고를 일삼았다. 10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성폭력 대책은 2008년 4월 혜진 예슬이 사건 뒤 법무부가 내놓은 대책과 거의 판박이다. 사태가 벌어지면 재탕 삼탕 대책으로 적당히 여론을 무마하고 나서 서민을 내팽개치니 같은 비극이 반복된다.

이 대통령, 권재진 법무부 장관, 한상대 검찰총장, 김기용 경찰청장은 할 말이 있는가.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박귀섭 씨의 아픔과 분노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는가. 이들이 대통령이 된들 흉포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성범죄#경찰#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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