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름 휴가차 들른 소록도에서 뜻밖에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 얘기를 들었다. “만일 손학규가 대통령선거에 나오면 이곳 한센병 환자들 사이에선 1등을 할지도 몰라요.”
얘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삼 정부 말기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그는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 전남 녹동항에서 증기선을 타고 소록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중환자 수용 병동부터 찾았다. 붉은색 벽돌의 음산한 병동을 돌며 중환자들의 일그러진 손을 꼭 잡은 채 기도를 올리고 그들의 애로를 3시간이나 들었단다. 이를 지켜본 한 인사는 “손학규, 참 독하더라. 보통 한센인 자치회 대표들과 만나 간담회하고 사진 몇 장 찍고 화장실 가서 소독하기 급급한데…”라고 회고했다.
그 순간 ‘손학규의 천형(天刑)’이 나도 몰래 떠올랐다.
2007년 이맘때. 한나라당을 뛰쳐나간 손 고문은 천형이라는 단어를 종종 입에 올렸다. “탈당이라는 것이 아주 커다란 멍에이고 우리 정치에서는 일종의 천형과 같이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게 의아했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지금은 마리안 수녀와 이태석 신부 등의 헌신적 삶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센병이 천형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오버랩된 것이리라.
5년이 또 흘렀다. 손 고문은 올해 대선 출마 선언에 앞서 블로그에 ‘내 마음의 책임면제철’이라는 장문의 글부터 올렸다. “이제는 제발 그 ‘주홍글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한나라당 탈당 전력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는 낙인(烙印)인가 보다.
천형과 주홍글씨, 멍에와 굴레…. 5년 전과 올해 손 고문이 고심 끝에 선택했을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헤아려 본다.
전엔 ‘천형처럼 감수하고 견뎌내야 할 짐’이었지만 이젠 ‘박박 지워버리고 떨쳐내고 싶은 굴레’처럼 여겨지는 지난 일과 관련해 지난 대선 때 결국 출마도 못했고 욕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만 놓아줄 순 없느냐는 절규를 담은 건 아닌지….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가 좋은 반응을 얻고, 민주평화연대가 지지후보 1위로 꼽은 뒤 민주당 지지세력 중에서 손 고문에게 주목해야 한다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고무된 듯 손 고문은 공사석에서 “내가 대통령 될 것 같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놓는다.
그의 ‘긍정 마인드’를 폄훼할 뜻은 없다. 하지만 “글쎄”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이유는 유력 주자들에 비해 낮은 지지율 때문만은 아니다.
김근태 조영래 등과 함께 학생운동 3총사였던 손학규, 영국 유학을 하고 신한국당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 의원과 장관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학규, 진보 세력과의 연대를 추구해온 민주당 대선주자로서의 손학규는 과연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친노 세력과의 낙인찍기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면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나는 본다. 그가 고백한 대로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던 욕망’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커진 것일 뿐. 그의 ‘태생적’ 권력의지가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그런데 어쩌나. 세상은 오히려 권력의지가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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