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에 추석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가 퇴짜를 맞은 사실이 북한 언론의 보도로 드러났다. 통일부는 8일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한 것도, 9일 북측의 거부 통지문을 받은 사실도 숨기고 있다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하자 마지못해 시인했다. 통일부는 “남북한 간에 협상이 진행되는 사안을 일일이 다 공개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이산가족 상봉 제의 같은 비정치적 사안을 공개한다고 해서 협상의 진전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북으로부터 퇴짜 맞을 것을 미리 걱정해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면 더더욱 잘못이다.
정부는 2월 이산가족 상봉 제의 때는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북측에 제의서를 전달한 직후 곧바로 공개했다. 이번 비공개 제의는 같은 사안에 대해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점에서도 적절치 못했다. 통일부는 2010년 9월 4일 북측이 수해 복구에 필요한 장비 및 물자와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사흘간 숨기다 언론 보도로 들통 난 전력도 있다. 남북 관계에서 원칙과 투명성을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정작 당당하게 추진해야 할 인도주의적 사안에서 원칙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보여 실망스럽다.
북측이 5·24 제재 조치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것도 잘못이다. 5·24 제재 조치는 북한의 천안함 격침, 금강산 관광 중단은 북한군의 남한 여성 관광객 사살에 따른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북한이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과 맞바꿀 사안이 결코 아니다. 말끝마다 ‘우리 민족끼리’를 들먹이는 북한이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위선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체제 이념 정치를 초월해 성사시켜야 할 과제다. 남측의 상봉 신청자 12만8678명 가운데 약 40%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의 80%가 70세 이상 고령자다. 북한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혈육 상봉을 해보려는 이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경색된 남북관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이 취한 새로운 경제개선 조치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