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김영환 씨 고문과 스마트파워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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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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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가 구금 중에 중국 당국으로부터 고문을 받았다는 보도를 놓고 지인들과 의견을 나눴다. “중국 당국이 김 씨가 한국인이라서 고문을 했을까”라고 물었더니 다들 “에이∼” 한다. 민주화 이전 우리나라의 경우와 현재 중국의 정치 발전 수준을 감안하면 중국에는 고문이 아직도 수사 관행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물었다. “김 씨가 미국인이라도 그렇게 했을까?” “그건 아닐걸…”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렇다면 김 씨가 가혹행위를 당한 것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닌 셈이다. 즉 미국인이라면 받지 않았을 부당대우를 받았고, 이는 곧 중국이 한국인을 미국인과 차별해서 대한다는 뜻이 된다.

왜 그럴까? 두 가지 답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인이 미국인은 좋아하고 한국인은 싫어해서다. 둘째, 중국인이 보기에 미국인은 껄끄럽고 한국인은 만만해서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그 답에 따라 이 문제의 귀책(歸責), 향후 대응책, 나아가 우리나라 외교의 기본 방향이 달라진다.

한국인이 싫어서가 답이라면 그 다음은 막연할 수밖에 없다. 우선 귀책을 찾기 어렵다. 중국인이 한국인을 싫어한다면 꼬집어서 누구 잘못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대책이라면 한국인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남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때론 거침없는 외교가 더 매력적


한국인이 만만해서가 답이라면 약간은 분명해지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탓할 수는 있지만 그 저자세가 약소국의 한계 또는 숙명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보면 이유는 둘째에서 찾으면서 해법은 첫째에서 찾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곧 힘이 없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표현하자면 하드파워가 모자라니 소프트파워에 의지하고 그것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옳은 것 같은 이 생각은 크게 잘못됐다.

하드파워도 있고 소프트파워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하드파워가 없는 소프트파워는 허망할뿐더러 위험하다. 하드파워는 내 수중에 있지만 소프트파워는 남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국가는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주권을 믿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남의 마음에 맡겨 두어선 안 된다.

소프트파워는 꽃단장하고 모범생처럼 행동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우락부락한 생김새와 거침없는 행동이 더 매력 있게 보이기도 한다. 자고로 힘의 정치로 불리는 비정한 국제정치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제정치에서 소프트파워란 한 나라가 가진 힘에 대한 인정과 존경과 사랑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하드파워가 막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소프트파워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실로 소프트파워란 용어는 조지프 나이 교수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무절제한 힘의 행사가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감소시킨다고 비판하면서 유명해졌다. 하드파워 없는 소프트파워가 허망하다면 소프트파워 없는 하드파워는 위태롭다.

폭력배가 주먹을 휘두르면 사람들이 떠나가지만 정의의 사도가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사람을 이끄는 힘, 소프트파워는 하드파워를 올바른 목적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파워, 즉 권력의 용도가 사람을 이끌고 부리는 것이라면 이것이 진정으로 강한 파워다.

우리나라는 약소국이 아니다. 패배주의에 빠질 이유가 없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청해부대를 파견했다. 해적을 퇴치하고 해로를 보호해 세계무역에 기여했다. 위기에 처한 북한상선도 구했다. 전격적인 ‘아덴 만의 여명’ 작전으로 해적에 납치당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조했다. 아덴 만의 여명작전은 명분과 실력, 다시 말해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과시함으로써 세계인의 경탄을 사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크게 높인 쾌거였다. 그뿐이 아니다. 상선을 납치하고 석해균 선장을 쏜 해적들을 재판하면서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대우로서 그들을 감동시켰다. 나라의 실력과 매력이 이렇다면 우리나라는 약소국이 아니다.

中에 당당하게 사과 요구해야


그렇다면 김영환 씨 사건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고문 금지는 중국도 국제협약에 가입한 인류 보편의 원칙이다. 우리는 불법조업 중 단속경관을 살해한 중국어민을 인도적으로 처우했다. 상호주의는 외교의 일반 원칙이다. 원칙과 명분이 우리에게 있으니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안 그러면 비웃음을 사고 소프트파워가 손상된다.

이명박 정부 최대 치적 중 하나가 바로 국력을 정당한 목적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해 국격(國格)을 높인 글로벌 코리아, 스마트파워 외교다. 그것이 후속 정부에도 이어져 우리의 외교태세에 뿌리내린다면 그 치적은 배가될 것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동아광장#김태현#김영환 고문#중국#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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