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스코 인사개입, 박영준 뒤의 몸통 누군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포스코 회장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2008년 11∼12월 서울의 호텔 등으로 당시 윤석만 포스코 사장,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을 불러 회장 후보 ‘인터뷰’를 했다. 두 달 후 박 전 차관은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에게 “청와대 의중”이라며 정 사장이 낙점됐음을 통보했다. 이 회장은 정 사장을 포스코 이사회에 회장으로 단독 추천한 후 임기를 1년 2개월 남겨두고 사퇴했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이 포스코 회장 인사를 좌지우지한 ‘몸통’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당시 그는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나 공직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박 전 차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도 윤석만 사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의 뜻’이라며 “회장 탈락에 승복하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박 전 차관이 윤 사장 등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포스코 협력업체인 제이엔테크의 이동조 회장이 배석했다는 점이다. 박 전 차관과 함께 ‘영포(영일-포항) 라인’에 속하는 이 회장은 이상득 의원의 지역후원회장이었다. 그는 박 전 차관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박 전 차관의 비자금 관리를 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박 전 차관의 집과 사무실을 수색한 지난달 25일 그는 중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했다.

포스코가 권력의 회오리바람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新)정권의 거센 외풍이 들이닥쳐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전 회장이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다. 포스코가 1988년 국민주 매각을 통해 민영화한 이후 정부의 포스코 지분은 전혀 없는데도 정권 교체 때마다 권력자들은 포스코를 전리품처럼 주물렀다.

이동조 회장의 제이엔테크는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2008년 1월 포스코의 협력회사로 등록했고 덕분에 매출이 10배 정도 급증했다. 인사철에 포스코 임원들이 이 회장을 만나려고 줄을 섰다는 소문도 있다. 민영화한 포스코가 이러했으니 공기업은 어떤 사정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은 정권 출범 후 공기업에 대거 진출했다. 2009년 이 단체 회원들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 사회자가 “참석자 중 공기업의 감사는 너무 많으니 사장급 이상만 소개하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권력 실세가 기업 인사를 주무르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박영준#포스코#인사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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