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MB의 獨也靑靑과 측근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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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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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이명박 대통령(MB)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집을 제외한 전 재산 331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청계재단(이사장 송정호)은 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국내외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재산을 출연한 재단은 유례가 없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회의 혜택을 입고 기업인으로, 정치인으로 특출하게 성공한 사람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 월급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MB는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월급을 불우이웃돕기와 통일비용 마련을 위한 통일항아리 기금 등으로 내놓고 있다. 재산 헌납이나 봉급 기부를 보더라도 MB가 국정을 수행하면서 사사로운 물욕(物慾)에 흔들릴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곡동 사저 논란도 측근들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MB가 혼자만 깨끗하면 된다는 ‘독야청청(獨也靑靑)’ 청렴의식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대통령의 청렴은 측근과 공직사회로 확산돼야 의미가 있다. 대통령이 공들여 챙길 일은 자본금 몇백억 원짜리 재단을 통한 자선 같은 것이 아니라 공직사회의 부패를 뿌리 뽑아 국가청렴도를 높이는 일이다.

이 대통령 임기 말에 터져 나오는 측근 비리들을 보면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처럼 식물정권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측근 몇몇이 ‘의왕 국립호텔’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러나보다 했는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등장하면서 태풍의 전조가 어른거린다.

포스코에 ‘빨대’ 댄 영포라인

박 전 차관은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오래해 범(汎)영포(영일 포항)라인으로 불린다. 포항 남-울릉에서 6선을 한 이 의원은 포항에 본사가 있는 포스코에 관심이 높았을 것이다. 이 정권 초기에 박 전 차관이 포스코 회장 인선에 개입했던 정황을 주간동아가 커버스토리(5월 15일자·‘포스코 농단한 박영준-이동조 커넥션’)로 보도했다. 박 전 차관은 포스코 회장 후보로 거론되던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포스코 협력기업인 제이엔테크의 이동조 회장을 동석시켰다. 사정을 소상히 아는 포스코 관계자는 “박 씨가 회장 후보 면접시험을 보는 것도 이상했지만 협력업체 회장이 배석한 것은 더욱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제이엔테크는 2007년 매출액이 27억 원이었으나 이 정권 출범 후 승승장구해 2010년 216억 원으로 급증했다. 박 전 차관의 돈 관리를 해준 것으로 의심 받는 이 회장은 주간동아 한상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차관과는 어릴 때부터 친한 동생 같은 사이로 지 속에 있는 것 내가 다 알고, 내 속도 영준이가 다 알고 그런 사이”라고 털어놓았다.

박 전 차관은 저서 ‘당신이 미스터 아프리카입니까’에서 28개 기관 57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전세기를 빌려 짐바브웨 잠비아 모잠비크에 자원외교를 다녀온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아프리카에서는 바로 옆 나라를 갈 때도 파리나 런던을 경유해야 할 경우가 많아 시간절약이나 비용을 고려하면 전세기를 빌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시간과 비용절약도 중요하지만 차관으로서 분수에 맞는 처신을 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덕목이다. 미국 국무장관이나 중국 외교부장은 전용기를 타고 아프리카 방문외교를 펼치지만 한국은 외교통상부 장관도 아프리카를 갈 때 전세기를 동원하지 못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권 실세의 눈도장을 찍으려고 여러 기관 사람들이 박 전 차관을 수행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말리지 않은 이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책임도 중하다. 박 전 차관이 업적으로 내세운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도 실속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관련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개미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 외교부 관련 공무원들도 다쳤다.

대통령 평가, 자선행위 아닌 업적

이 정부가 촛불시위를 겪으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영포라인으로 채웠다. 대통령의 ‘직계 고향’ 사람들이라서 충성도가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의식이 조직의 건강성을 해쳤다. 민간인 사찰을 하고 대통령의 ‘형님’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의원들의 뒷조사도 했다. 박 씨는 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 시절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감찰 내용을 비선(秘線) 보고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영포라인의, 영포라인에 의한, 영포라인을 위한 사찰이 결국 이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요즘 속속 드러나는 공기업 비리 백태를 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엉뚱한 직권남용을 하느라 공직기강을 잡는 데도 소홀했던 것 같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MB의 사재 출연을 흉내 낼 생각일랑 아예 접고, 집권 후 측근비리의 싹이 자라지 않도록 대선캠프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이명박 정부#청계재단#측근비리#영포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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