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돼지고기 수출입 구조는 독특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삼겹살 부위를 선호하는 반면 등심 안심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돼지 한 마리를 도축해서 나오는 삼겹살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체 소비량의 40%를 수입해 충당한다. 그 대신 남아도는 등심과 안심은 햄, 돈가스로 가공해 일본 등에 수출한다.
수입 삼겹살의 할당관세(0%) 적용량을 놓고 정부와 양돈농가가 최근 입씨름을 벌였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2분기(4∼6월) 할당관세 수입 한도를 7만 t으로 정하려 하자 대한한돈협회는 “돼지 출하를 중단해 돼지고기 파동을 일으키겠다”며 반발했다. 정부가 무관세 수입량을 2만 t으로 줄여 사태를 수습했다. 국제가격보다 높은 국내 돼지 가격을 계속 유지해 달라는 농가의 요구가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돼지농가의 생산성은 덴마크 네덜란드 등 양돈 선진국의 60% 수준이다. 국산육의 시중 도매가격도 수입육보다 배나 비싸다. 게다가 구제역 여파로 예년에 비해 돼지고기 가격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
어떤 산업이든 생존하려면 질 좋은 상품을 싼값에 공급해야 한다. 높은 가격을 받고 싶으면 정부에 손을 벌릴 게 아니라 상품 가치를 높여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고 제품을 차별화해야만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나 철강 산업의 역사에서 보듯 보호주의에 기대면 당장은 편하지만 결국 죽는 길로 들어선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에도 문제가 많다. 골목 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형마트에 대해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 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접근으로는 더 좋고 다양한 상품을 싸고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유통혁명’은 점점 멀어진다. 최종 피해자는 물론 소비자다.
이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소비자의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돼 있는 소비자 후생은 경제정책의 핵심 목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싸게 살 소비자의 권리는 무시되기 일쑤다. 한국소비자연맹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소비자단체협의회가 한돈협회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논의 테이블에 합석하지는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농민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생산자 쪽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 역시 서민이다. 소비자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