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원]장례식 초청받은 日마술사가 北에 가지 않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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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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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원 도쿄 특파원
김창원 도쿄 특파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에 공식 초청받았던 일본의 여성 마술사 프린세스 덴코 씨(51)가 장례식을 이틀 앞둔 26일 불참을 통보했다. 덴코 씨는 김 위원장 사망 발표가 있었던 19일 외국 조문객을 정중히 사절한다고 밝힌 북한이 유일하게 초청한 외국인이었다. 김 위원장의 가족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장례식에 흰 옷을 입고 와 달라”고까지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위원장과 덴코 씨의 각별한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덴코 씨는 북한을 수차례 방문해 마술 공연을 하면서 김 위원장과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 1998년과 2000년에는 각각 열흘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가 김 위원장이 더 머물라고 붙잡는 바람에 1개월 넘게 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덴코 씨는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김 위원장이 특별히 마련한 전용 안가(安家)에서 머물렀다. 그는 “북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것을 걱정한 사모님(김 위원장의 부인)이 손수 팬케이크를 구워줬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수조를 탈출하는 마술쇼 공연을 위해 “(북한) 수돗물이 피부를 상하게 할 수 있다”며 2t 분량의 수조를 프랑스산 생수 에비앙으로 채워주기도 했다. 극진한 대우에 감동한 덴코 씨는 이후에도 수차례 북한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했으며 돌아올 때마다 덴코 씨를 그려 넣은 등신대(等身大)의 초상화와 백자, 자수화 등 진귀한 기념품을 컨테이너 한 대 가득 받아왔다고 했다. 선물 중에는 김 위원장이 직접 ‘대산(大山)’이라고 이름 지은 북한 천연기념물 풍산개도 있었다.

생전에 자신에게 이처럼 각별한 호의를 베푼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김정일의 장례식에 참석한다면 마술사로서 더욱 유명해지는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덴코 씨는 소속기획사를 통해 “모든 상황을 감안해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민간외교에 노력해 왔지만, 일본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세계 각국과 북한의 사고의 차이를 고심했다”는 게 이유였다.

일본 내에서는 그의 결정을 북한이 납치한 피해자 가족 등 일본 국민의 대북 정서를 고려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북한을 “상황이 불리하면 국가 간의 협정도 손쉽게 깨고, 불만이 있으면 언제라도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천덕꾸러기”로 보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김정일 사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을 불안하게 주시하는 일본 국민의 민감한 정서가 마술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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