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경미]변별력 잃은 ‘물수능’…논술학원 부추길라

  • 동아일보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여러 대학의 논술시험이 집중됐던 주말이 지나고 논술 경향을 알아보기 위해 공교육 교사와 학원 강사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한 대로 수험생들을 통해 발 빠르게 정보를 수집한 학원 강사는 이미 모범답안을 만든 것은 물론 올해 논술 경향에 대해 총평을 해주었다. 그러나 공교육 교사는 논술문제가 현재 대외비이기 때문에 입시가 끝나고 대학이나 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가 공개되는 내년에나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입시에 임하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물론 공교육과 사교육의 ‘집단 내’ 차이가 있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공교육과 사교육 ‘집단 간’에는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나치게 쉽게 출제돼 변별력을 잃게 되면서 올해 논술시험은 유난히 어려워졌다. 학생 선발을 위한 변별력이 절실한 대학에서 어려운 논술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자연계 수리논술은 대학 수준의 수학과 과학 전공 내용을 토대로 융합적으로 출제하기 때문에 일부 채점교수는 정답을 보고도 이해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인문계 논술 역시 만만치 않아 모 대학은 미국 사회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지문으로 발췌해 전 세계적으로 표준시간을 설정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고, 모 대학 논술문제에는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에 나오는 사회화의 기본 개념인 ‘아비투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수능이 어려워지면 수리 문제 하나로 학교급(級)과 당락이 갈리는 일이 발생한다. 수리 영역에서 배점이 높은 4점짜리 문제 하나가 표준점수에서는 더 큰 차이로 벌어지고 수리에 가중치를 주는 최상위권 대학에서는 더 큰 차이로 증폭되는데, 이는 3년 동안의 내신 등급을 뒤집을 수 있는 위력을 갖는다. 따라서 수능이 어느 정도 쉬워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풍선효과다. 변별력을 잃은 수능은 올해와 같이 터무니없이 어려운 논술시험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수능은 산골벽지에서도 EBS와 문제집으로 대비할 수 있지만 논술은 학원을 통해 효과적으로 대비해야 되기 때문에 학원 접근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수능에 의해 가능했던 교육 사다리가 논술에 의해 걷어차이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논술시험은 대학마다 경향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 대학을 지망하는 집단별로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단일 학교에서는 여러 대학의 논술 대비반을 운영하기 힘들다. 또한 동일 대학이라도 논술 경향이 해마다 다르기 때문에 치열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학원이 공교육보다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실제 학원가의 동향을 보면 논술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수능 학원이 대학별 고사 학원으로 간판을 바꾸어 다는 현상이 목격된다.

게다가 너도나도 논술 유명 강사를 자처하면서 고액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수능은 정해진 범위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강사의 전문성이 높은지를 판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카오스의 성격을 갖는 대학별 고사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강사들이 논술 전문가를 자처하고 높은 수강료를 요구하는 난맥상이 벌어진다. 논술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마케팅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논술시험이 어려워지면 AP를 통해 심도 있는 수학·과학 교육을 받은 과학고와 영재고 학생들에게 유리해지기 때문에 과학고와 영재고 쏠림 현상을 유발시켜 진정 기미가 보이던 중학교 사교육 시장에 불씨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결론적으로 대학별 논술에 선발 기능을 위임시키는 쉬운 수능이 능사는 아니다. 2011학년도의 ‘불수능’과 2012학년도의 ‘물수능’의 중간 지점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고교와 대학에서 다루는 내용은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고교 수준에서의 심화 내용이고 대학 수준의 전공 내용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고교 내용을 토대로 소박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대학들이 논술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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