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佛 한국인 입양자 출신 의원에 “우리의 한국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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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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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프랑스 정계에서 외국인 출신 정치인에 대한 차별성 발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 태생의 정치인을 비하하는 발언이 나온 데 이어 이번에는 녹색당의 한국 출신 지방의원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의 피해자가 됐다.

논란에 불을 지핀 사람은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매파’ 알랭 마를렉스 의원. 선거전문가인 그는 한 인터뷰에서 25일 치러질 상원 선거를 언급하다 “우리의 한국인(notre Cor´een national) 장뱅상 플라세 씨(43)가 선거에서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드프랑스 지방의회 부의장인 플라세 지방의원은 녹색당 사무부총장이자 세실 뒤플로 당수의 정치보좌역으로 이번 선거에서 에손 지역에 출마한 당의 실세 중 한 명이다. 서울의 보육원에서 자라다 일곱 살 때인 1975년 프랑스에 입양됐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지난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크게 다룬 바 있다.

그런 그를 ‘우리의 한국인’이라 칭한 것은 어린 시절 귀화했지만 타 민족 출신은 프랑스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표현이며, ‘우리의’는 다분히 비아냥대는 뉘앙스다.

부당한 공격을 받은 플라세 의원은 3일 트위터를 통해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주의를 모두 담은 저급한 발언”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물론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지만 34년 전부터 나는 오직 프랑스인이다. 입양 2년 만에 귀화했고 모든 학업과 사회생활을 프랑스에서 했다. 나를 입양해준 조국을 사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회당은 마를렉스 의원을 징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당 경선 선두주자인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성명을 통해 “혐오스러운 일탈”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UMP의 장프랑수아 코페 대표는 “마를렉스 의원의 표현은 유감스럽고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7월 UMP 소속인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노르웨이 출신 이중국적자인 녹색당의 에바 졸리 대선후보를 겨냥해 “이 여성은 프랑스의 오랜 전통과 프랑스적 가치, 프랑스 역사의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정계가 한바탕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우리의 한국인’ 소동을 국방차관 출신으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측근인 ‘수구꼴통’ 의원의 일회성 해프닝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사르코지 정권은 최근 이민 조건과 외국인 유학 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 중이다. 시민혁명에서 발로한 인권과 관용, 연대의 가치를 중시해온 프랑스 사회 전반에 커져가는 우경화 의식이 우파 정치권을 중심으로 서서히 노골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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