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창규]‘동반 성장’, 화학적 융합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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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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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감사의 날(Appreciation day)’, 기업인일 때 내가 호스트했던 행사로 매년 두 번 세계 반도체 장비 및 소재 업체 대표들을 초청해 글자 그대로 감사의 뜻을 전한 자리다. 얼핏 파티 같아 보이지만 회사의 개발 계획에 대해 설명한 후 청문회 하듯 퍼붓는 질문에 성의껏 답하느라 진땀깨나 뺐다.

긴장감이 도는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반도체 투자를 가장 많이 하고 최첨단 장비와 소재를 가장 먼저 구매하는 회사가 호스트하는 자리인 만큼 반도체 생태계의 표준을 이끌 중요한 결정들이 여기서 내려진다. 세계 최초의 상용화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장비나 소재 역시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이 커 이들은 우리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과 깊이 상의하지 않고 그저 원가 절감의 대상으로만 인식한 채 우리 의도대로 신시장을 창출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들을 단순한 ‘협력회사’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불렀던 이유다.

최근 ‘동반 성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글자 그대로 나라 경제의 중요 인프라들을 ‘다 같이 성장시키자’는 의미일 텐데,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말이 쉽지 ‘다 같이 성장한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잘되는 분야를 일부 희생시켜 전체 평균을 맞춰도 동반 성장은 된다. 이 방식은 결국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것이고, 자칫 ‘동반 추락’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 경제를 지금 위치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대기업이며, ‘디지털 코리아’ 이후 마땅한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물론 과거 압축 성장 과정에서 맏형답지 못했던 이들의 일부 행태는 앞으로 철저히 혁신해야 하며, 좀 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과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주문할 필요는 있다.

잘나가는 분야는 독려해 더 약진하게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분야도 잠재력과 의지가 있다면 공평한 기회를 주는, 즉 양자의 장점을 화학적으로 결합해 ‘상향 평준화’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국가 시스템으로 풀 수밖에 없다.

얼마 전 R&D전략기획단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정된 다섯 개의 ‘미래산업 선도기술 개발 사업단’과 협약식을 가졌다. 이들은 한국의 R&D 역량을 총결집한 160개의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연구소, 대학들로 구성돼 있다. 이 메타플랜은 R&D를 통해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하자는 목적 외에 중요한 의지를 담고 있다. R&D를 통해 대한민국 몸에 꼭 맞는 ‘다 같이 성장하는 모델’의 모범 사례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선 중소·중견기업에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기존 모델을 혁신적으로 손질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주관 기관(통상 대기업)이 소유했던 지식재산권을 실제 개발 기관이 소유하도록 해 모든 참여자가 균등한 기회를 갖게 했다. 또 최초로 대기업끼리의 협력도 과감히 추진한다. 라이벌 대기업 간 협력을 통해 대(大)면적 박막 태양전지를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이번 사업은 산학연 모든 참여자들이 상호 매트릭스로 엮여 협업하지 않고서는 성공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선진국의 문을 열 곳간 열쇠를 참여자 모두에게 맡기는 대신 책임도 공평하게 나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잘 이용했던 우리는 디지털 코리아의 신화를 일궜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미래 신시장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는 대기업만으로 또는 중소기업만으로는 전투력이 달린다. 대기업이 치고 나가지 않는데 중소기업이 크기는 힘들며, 중소기업의 뒷받침 없는 대기업의 약진 역시 어렵다. 둘을 편 가르기 하여 따로따로 접근하는 식의 이분법적 동반 성장을 경계하는 이유다.

우리가 제2의 디지털 코리아를 이룩하는 날, 강소(强小)기업이 즐비한 ‘히든 챔피언’의 나라로 거듭나는 날, 더는 필요 없어진 ‘동반 성장’ 현수막을 모두 걷어내는 날이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날이다.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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