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지하철로 15분 정도 걸리는 인민군사박물관은 베이징(北京)의 주요 관광명소로 꼽힌다.
14일 낮 기자가 찾은 박물관 정문 앞은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방문객의 줄이 끝없이 이어졌고, 박물관 내부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방문객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나 단체관광을 온 중국인이었다.
박물관의 전시실에는 중국이 독자 개발한 전투기와 전차, 미사일, 핵무기 등 수만 점의 무기 실물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올해로 창당 9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과 창군 84주년을 맞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역사가 담긴 사진과 문서 등 기록물도 수십만 점에 달했다.
그중 2009년 건국 60주년을 맞아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을 소개한 전시관이 눈길을 끌었다. 대형 화면에선 인민복 차림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중국산 최고급 승용차에 올라 결연한 얼굴로 군부대를 사열하는 장면이 비쳤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전투기 등 중국제 최첨단 무기들도 행사장의 땅과 하늘을 누볐다. 많은 관람객이 전시관 앞에 멈춰 화면에 눈을 고정시켰고, 일부는 어린 자녀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21세기 중화부흥(中華復興)을 과시한 중국군의 위용에 고무된 분위기였다.
중국군에게 한국전쟁 참전은 자랑스러운 역사다. 중국 초중고교 역사교과서에 한국전쟁은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으로 기술돼 있다.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지난해 4월 “(한국전 참전은) 침략에 맞서 평화를 지킨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북한과 힘을 합쳐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15일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과 한중 국방장관 회담을 갖기 전 방문한 베이징 외곽의 경위3사단도 한국전 참전 부대다. 김 장관은 “과거엔 적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여기 와 있으니 친구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회담 전날인 14일 중국군이 보여준 태도는 친구를 대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천빙더(陳炳德)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김 장관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을 맹비난하고, 한국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눌려 할 말을 못 한다는 돌출 발언을 쏟아냈다.
거침없는 몸짓과 표정에선 한미동맹 당사국의 국방수장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장관 일행은 예상치 못한 ‘외교적 무례’를 어색하게 웃어넘겼지만 천 총참모장은 아랑곳없이 훈계조의 미국 비난을 15분간이나 계속했다.
누가 봐도 의도적이고 계산된 꼼수였지만 국방부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고위급 군사회담 정례화 등 많은 성과를 거뒀으니 별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국방부는 이번 회담이 한중 국방관계 발전의 전기가 됐다고 자평했지만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이번 회담을 취재하면서 친선친교를 내세워 ‘하오하오(好好)’ 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북한을 두둔하거나 오만한 대국의 발톱을 드러내는 중국의 실체를 봤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김 장관은 16일 중국 현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확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 잘 지내야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중 군사관계가 우리 바람대로 순풍에 돛단 듯하진 않을 거란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양국 군 당국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험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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