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상인]정당도 대학도 망치는 ‘캠프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며칠 전 한국선진화정책학회 세미나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른바 ‘캠프 민주주의’의 타파를 주장했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만들어지는 대선 캠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임기 내내 존속하고, 그 결과 “국정과 소속 당(黨)에 개입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문수의 캠프 정치 폐해론 옳다

김 지사는 ‘캠프 정치’의 부정적 효과를 주로 정치권 중심으로 말한 듯하다. 당 바깥의 캠프로 힘이 집중돼서 당이 허구화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관행이 청산되지 않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하고 나라의 장래는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김 지사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캠프 참여를 금지하는 당헌 당규의 제정을 거론하기도 했고 ‘캠프 안 만들기 운동’ 또는 ‘캠프 불가담 운동’의 전개를 제안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스스로 내년 말 대선의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나온 ‘캠프 정치 청산 발언’은 일단 신선해 보인다. 대선 캠프는 정당정치를 고사(枯死)시키면서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새로운 기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공천하지만 실제 선거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대선 캠프다. 대권(大權) 역시 공당(公黨)의 몫이라기보다 특정 캠프가 차지할 때가 많다. 의원들로서도 당에 대한 충성보다 캠프 참여가 이익 배당이 크다. ‘권력의 집’은 정당이 아니라 대선 캠프라고 한국만의 정치학 교과서를 써야 할 판이다.

하긴 여야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정당의 취약한 국민 지지도를 감안하면 그곳에 힘이 제대로 실리기는 애당초 어렵다. 게다가 정당이라는 조직 자체가 한국에서는 늘 이합집산 중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소속 정당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편이 유리할 때가 많다. ‘국민후보’ 또는 ‘민중후보’ 운운하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정당정치가 헌법적 규범이자 명령임에도 캠프 정치의 폐단이 나날이 심화하고 있음을 김 지사는 지적한 것이다.

더구나 캠프 정치의 문제는 정치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계 또한 그것의 폐해를 공유한다. 1980년대 말 이후 선거민주주의의 만개(滿開)는 지식인 사회에 일종의 특수(特需)를 유발했다. 과거 군사권위주의 시절만 해도 정치권의 ‘새로운 피’로 동원된 것은 주로 군부나 법조 출신의 경성(硬性)권력이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지식인들의 소프트파워가 대권창출 과정에 동참하는 일이 점차 관행화하고 있다. 권력과 지식 사이에 일종의 정치적 동업(同業)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폴리페서 극성에 대학도 정치판

물론 지식인이라고 정치를 외면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정치가 속(俗)된 것만은 아니듯이 학문 역시 성(聖)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양측의 합심과 합력(合力)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을 보거나 현재의 구미 선진국을 보더라도 지식인의 정치 참여 그 자체는 놀랍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작금의 한국 사회가 드러내고 있는 그것의 유별난 과잉이다.

정당정치가 사실상 실종된 나라에서 5년마다 권력이 물갈이하는 상황은 지식인들에게 치명적 유혹이 될 공산이 크다. 대선 캠프란 말하자면 권력에 접근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다 보니 당적을 옮기는 철새 정치인은 옛날보다 줄고 있는 대신, 소속 캠프를 이리저리 바꾸는 철새 지식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요즘이다. 오죽하면 한 대통령을 임기 말까지 보좌하는 것을 두고 ‘순장(殉葬)’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더욱이 지식인들이 정치이념이나 국가정책에 관련된 자문이나 조언을 넘어서 현실정치의 권력공학적인 부분에까지 적극 나서는 일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 문제에 대한 대학가의 자성과 자정(自淨) 노력이 최근 나름대로 없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교수들의 대거 참여를 전제로 하는 캠프 정치의 발호는 학문적 내공의 고갈과 지식의 정치 예속 등을 통해 끝내는 대학의 황폐화를 초래한다는 우려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정치권이 함께 넓혀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정당민주정치의 복원,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지금과 같은 모습의 캠프 정치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이는 결코 특정 대권주자에 대한 선호나 호오(好惡)의 차원이 아니다. 김 지사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캠프 정치의 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기대한다. 차기 대선이 불과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 우물쭈물하다 보면 한국의 대학과 정치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되기 쉽다.

전상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sangin@sn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