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진]‘몸집 불리기’ 경쟁과열… 흔들리는 출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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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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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문화부 기자
김진 문화부 기자
친한 출판사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한숨 섞인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어렵다, 어렵다 하던 출판계의 위기감이 이제 현실로 드러나는 거죠.”

김훈의 ‘칼의 노래’를 낸 생각의나무, 히가시노 게이고 ‘백야행’의 태동출판사,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건축’의 이레. 이처럼 베스트셀러로 친숙한 출판사들이 최근 연이어 부도가 났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생각의나무가 20일 오전 9시 30분 최종 부도처리됐다”고 밝혔다. 태동출판사는 이에 앞서 5월 말, 이레 출판사는 4월에 부도를 맞았다. 한국출판인회의 고흥식 사무국장은 “경영악화 상황에서 대형 도매업체의 부도 여파를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출판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판계 인사들은 우선 번역서의 과도한 선인세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음사 홍보팀 이미현 부장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잘 팔리는 책도 지나치게 비싼 선인세를 내고 들여오는 바람에 쉽게 이익을 내지 못하며, 이런 악순환이 누적돼 결국 출판사의 경영 악화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면 일단 출판하고 보자는 과시욕이 출판사 간의 과열경쟁을 넘어 제살 깎아먹기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최근 국내 에이전시 에릭양은 알랭 드 보통이 집필에 참여한 시리즈물 ‘스쿨 오브 라이프’의 선인세로 최소 2억5000만 원을 국내 출판사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국내 경쟁을 통해 2억 원 가까이 ‘몸 값’이 올랐다. ‘백야행’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도 최근 입찰에서 2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보여주기 위한’ 다품종 생산과 그로 인한 재정악화 및 덤핑 관행이다. 여러 출판사가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책을 찍어내고 이로 인한 높은 홍보비용 등이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며, 이를 만회하려 스테디셀러까지 할인 판매해 수익률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주연선 대표는 “불필요한 책까지 지나치게 많이 낼 것이 아니라 출판사 본연의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판계 인사들은 생각의나무와 이레의 부도 소식에 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양서를 많이 출판했던 출판사였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이를 계기로 그간 출판계가 건강한 경영보다 과시적 ‘보여주기’ 출판에 치우치진 않았는지 함께 되돌아볼 때다.

김진 문화부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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