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은 2일 부산에서 핵잠수함 ‘미시간’을 국내 언론에 공개했다. 길이 170m, 폭 13m, 1만8000t급으로 보통의 잠수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규모다. 길이 199m, 폭 31m, 1만4000t급의 아시아 최대 상륙함인 우리 해군의 독도함에 육박하는 덩치다. 1600km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맞힐 수 있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154발 갖추고 있다. 승조원 160여 명을 태우고 최장 6개월간 바닷속에 머물 수 있고, 특수부대원 60여 명과 함께 90일간 작전도 가능하다. 특수요원들은 빈라덴을 사살한 바로 그 네이비실(Navy Seal) 부대 소속이다.
핵잠수함 공개는 對北 경고 메시지
미 해군은 왜 이때 미시간함을 공개하고 사진과 영상 촬영을 허용했을까. 한국 언론과 국민의 호기심을 채워주려는 단순한 호의에서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번 핵잠수함 공개에는 전략적 목표가 있다고 본다. 북한에 ‘섣불리 도발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군의 대북(對北) 메시지는 3일 서해에서도 보내졌다. 일본 주둔 미 해병대 지휘관들이 백령도 연평도에서 실시한 우리 해병대의 해상 사격훈련을 처음으로 참관했다. 이 역시 북한에 대해 ‘유사시 한미 연합 해병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고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최근 북한이 남한 어선을 납치하려는 도발 징후가 포착됐다는 정보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국방 담당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있는 동안 미 항공모함을 비롯해 각종 전투기와 전폭기, 주요 육해공군 기지 및 방위산업체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994년 6월 1차 북핵(영변 핵시설) 위기 때 미 중북부 지역의 미사일 기지를 방문했던 일이다. 대통령의 암호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전 세계 어느 목표물에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지하 통제센터까지 봤다.
당시 메시지는 ‘영변 핵시설을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곧이어 김일성이 사망하는 바람에 영변 공격은 무위에 그쳤다.
병법(兵法)의 전설 손자(孫子)는 일찍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그러나 백전백승이 최선의 전쟁은 아니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아무리 잘 싸워 이기더라도 아군 역시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남북한 사이에 다시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이겨도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 절실하다. 손자도 ‘무기를 사용한 공격은 최후 수단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의 전쟁
메시지에 의한 전쟁 억제야말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북한에 ‘다시 도발하면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도발 의지를 꺾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입만으로는 안 된다. 군사력이 절대적 우위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민군(民軍)이 단합해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을 똑똑히 보여줘야 메시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자면 북한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능력이 기본이다. 또한 아무리 첨단 정보수집 장비를 갖고 있어도 분석 판단능력이 모자라면 도발 징후를 알아낼 수 없다. 지난해 우리 군은 북한 잠수함과 잠수정 2척이 기지를 이탈한 사실을 미리 알았지만 대비를 소홀히 해 천안함 폭침을 당했다. 연평도 포격은 북한 해안포 진지 주변에서 이상 징후를 뻔히 보고도 ‘설마’ 하다 당했다. 우리는 북한의 선수(先手)에 후수(後手)만 따라 두다 보니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는커녕 저들의 도발 메시지를 읽기에만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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