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94년 전의 무명용사 하관식 가서 경례한 오바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8일 03시 00분


미국이 최근 110세의 나이로 타계한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프랭크 버클스에게 보여준 경의가 감동을 자아낸다. 지금으로부터 94년 전인 1917년 참전한 그는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지만 무공훈장을 받은 적이 없는 무명용사였다.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링컨기념관과 국방부 청사가 내려다보이는 수도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존 퍼싱 원수 묘역의 바로 옆자리다. 미국을 위해 싸운 군인에 대해서는 계급의 고하(高下)를 따지지 않는 원칙을 보여준다.

버클스의 하관식이 있던 1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다른 국사(國事)를 제쳐둔 채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묘지를 찾아가 성조기에 싸인 그의 관 앞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국방부 주재로 엄수된 하관식에는 수천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백악관을 비롯한 미국 전역의 공공기관과 해외 미국 공관, 미군 함정에도 조기(弔旗)가 걸렸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 경찰 소방관 같은 ‘제복 입은 대원’에 대한 미국의 예우는 각별하다. 미군은 밀림을 헤치고 강바닥을 뒤져서라도 실종 군인과 전사자를 끝까지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소방관들은 2001년 9·11테러 때 붕괴 직전의 건물 속으로 진입해 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그 와중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소방관도 많았다. 미국인은 위험에 굴복하지 않는 이들을 존경한다.

동(東)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큰 위기에 놓이자 지방전력회사 직원이 긴급수리 요원으로 자원한 사례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올해 59세인 그는 6개월만 지나면 정년퇴직을 하고 연금을 받으며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지만 원자로의 안전을 지키고 주민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나섰다. 그의 가족도 눈물로 배웅하며 결심을 막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은 폭발이 잇따르고 방사선 누출이 심해 전쟁터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곳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전역에서 자발적으로 달려온 기술자들과 기존 원전 직원 등 180여 명이 ‘방사선 대량 누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투철한 책임감, 자신보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애국애민(愛國愛民)의 정신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웅들이 적지 않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 때 자진해 실종 장병 수색을 위해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를 비롯해 수많은 군인, 경찰, 소방대원 등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선양(宣揚)해줘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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