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G20 잔치 외교’ 뒤편의 바람난 외교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2000년대 초 미국 뉴욕 시가 면책특권을 이용해 주차 위반을 일삼는 외교관 차량을 단속한 적이 있다. 이집트 파키스탄 나이지리아처럼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적발도 많이 되고 벌금도 안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관 역시 자기 나라의 풍토와 규범, 부패성향까지 온몸으로 반영한다”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서 ‘사회적 동물’에서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의 스캔들은 2011년 대한민국 외교 막후의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는 여러 재외공관장을 ‘측근 인사’ ‘보은 인사’로 임명해 이런 사태를 증폭시켰다. 이들이 현지 외교관들의 근무 기강을 바로 세우고 부적격자를 걸러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현 정부 출범 때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인사 문제가 해외에서 국가 망신을 부채질한 꼴이다. 정부가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잔치 외교’ ‘행사 외교’에 치중하는 동안 속으로는 곪아 터져버린 형국이다.

외무고시로 뽑힌 외교관들은 기수에 따라 자동으로 진급해 공관장으로 나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다. 국가를 대표하고 교민을 보호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상사 주재원과 교민 위에 군림하며 외교보다 내교(內交)에 힘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재국 행사에 참여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오는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리를 접대하고 인사 로비, 예산 로비에 바쁘다.

그동안 드러난 외교관 비리도 가지가지다.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참석자 수를 부풀려 공금을 챙기는 공관장도 있었고 출장 기간을 거짓으로 늘려 공금을 착복한 외교관이 적발됐다. 브로커에게 뇌물을 받고 ‘비자 장사’를 하는 외교관, 주택이나 자동차 구입 서류를 조작해 공금을 타내는 외교관, 관용 차량을 개인 차량으로 이용한 외교관도 있었다. 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외교관의 일탈과 무사안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외교통상부는 이번과 같은 사태를 감추기에 급급하거나 방임해 왔다. 재외공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는 국정감사 때마다 몇 개 그룹으로 나눠 4, 5개국씩 순방하지만 현안을 잘 알지 못해 현지 대사의 초청 만찬을 가장 큰 일정으로 삼을 정도다. 유럽공관 감사 때는 꼭 파리를 들르고, 동유럽권 국가 하나와 러시아를 포함해 해외 관광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항공기의 비즈니스석 이상을 이용하는 건 물론이다. 이 의원들이 재외공관을 감독하는 데 얼마나 힘을 보탰는지 묻고 싶다.

중국이 미국과 ‘평기평좌(平起平坐·서로 대등한 관계)’를 주장하고 북한의 김정일은 막바지 세습공작을 서두르는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 무대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지난해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의 특별채용 의혹이 터지면서 외교부는 인사와 평가, 배치 등에서 대대적 개혁을 공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외교관 채용과 양성을 포함한 개혁은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각종 비리에 연루되고 귀국 후 자리 챙기기에 급급한 외교관들로는 대한민국의 생존이 위험해질 수 있다. 개혁은커녕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도, 공직자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바람난 외교’가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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