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교식]이번 설엔 ‘소파남’에서 ‘부엌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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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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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식 여성가족부 차관
김교식 여성가족부 차관
가족을 생각하면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젖먹이 동생을 등에 업고 동네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해질녘이 되면 온 동네가 가마솥에 솔가지 태우는 향기와 연기로 자욱해진다. 이때쯤 멀리서 집에 들어오라고 부르시던 어머니의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우리집 형제들은 7남매여서 동생들 보육의 상당 부분은 누나와 형의 몫이었다. 형제들이 한창 커나갈 때 우리 가족은 학교를 찾아 공주로 대전으로 서울로 그리고 고향집 논산에 흩어져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시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그 많은 살림을 꾸리셨는지 상상이 안 간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고 없이 무사히 잘 자랐다. 이는 우리 가족만이 아닌 대한민국 모든 가족의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그 많은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힘은 부모님들의 자녀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가족 간의 무한한 책임의식과 신뢰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의 힘은 참 강해 요즘의 가족은 기억 속의 가족과 많이 달라졌다. 외형적으로 대가족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핵가족이 전형이던 시대도 지나갔다. 조손가족과 한부모가족, 부부가족 등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늘어나고 맞벌이도 보편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 내부에서도 아버지의 절대적 권위가 퇴색하면서 의사 결정이든 가사 분담이든 가족 구성원의 관계가 민주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여성이나 자녀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인식이 높아진 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그러나 꼭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했던 가치와 기억, 의무, 책임감 등이 약해지면서 부모와 자녀 간에 돌봄과 소통이 미흡해졌다. 부부간에도 희생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신뢰관계보다는 교환관계를 내세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정을 넘어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의 이혼율과 자살률, 최저 수준의 출산율, 도덕의 붕괴 등이 그렇다. 이런 현상의 많은 부분은 변화된 가족행태에 걸맞은 가족가치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들 ‘가족은 사회의 기본 토대’라고 한다. 가족문제 해결은 모든 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며 필요조건이다. 실제 청소년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가족의 문제에 다다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가족은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절대적인 기본요소이자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근육이다.

그래서 정부도 가족정책과 여성정책, 아동과 청소년정책을 만들어 집행한다. 가족 부양의 경제적 부담을 더는 시스템도 만들고, 돌봄의 공백을 해소하고 가족이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지원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유연근무제 확대와 가족친화 기업문화 확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정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바뀐 환경에 맞는 새로운 가족가치와 가족문화가 가족 안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 기본은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존중과 배려, 책임감이다.

설이 다가온다. 우리에게 설은 어떤 의미인가? 모쪼록 이번 설부터는 ‘소파남’이나 ‘안방남’이 사라지고 ‘부엌남’과 ‘아돌남(아이 돌보는 남자)’이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그래서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이 사라져 가족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풍요로운 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신뢰와 헌신과 책임을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이 지나온 자리에는 언제나 가족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교식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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