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갑영]물가 때려잡는 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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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1980년 초 소련에서는 통치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비아냥거리는 유머가 널리 나돌았다. 바로 그가 노벨 생물학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산당 서기장에게 웬 생물학상을 준단 말인가. 당시 소련은 엄격한 사회주의 원리에 따라 정부가 경제를 철저하게 통제했던 것이다. 식량도 집단농장에 배정된 물량을 생산해 분배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목표는 항상 미달됐고, 배급 가격을 비웃으며 암거래가 성행했다. 통치자의 철권(鐵拳)이 시장에서는 힘없는 공권(空拳)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서구와의 데탕트를 통해 해마다 미국에서 곡물을 수입해 식량 부족을 해결했다. 국민들은 그 넓은 러시아 땅에 씨를 뿌리게 하고, 추수는 미국에서 해오는 그를 노벨 생물학상감이라고 빈정거렸던 것이다.

미국은 이보다 훨씬 전에 가격 규제의 쓰라린 아픔을 경험했다. 1777년 펜실베이니아 주 의회는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는 조지 워싱턴 장군을 돕기 위해 식량과 의류 등 군수물자의 가격통제법을 제정했다. 물가안정과 보급물자의 확보로 전투력을 향상시키자는 법이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자 물가는 폭등했고, 농부들은 식량을 내놓지 않았으며 오히려 적군에게 더 비싼 값으로 팔아버렸다.

세계사에 점철된 가격통제의 禍

혹한 속에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워싱턴군의 아사자가 속출했다. 부대를 처참하게 무력화시킨 공포의 적은 영국군이 아니라 오히려 아군을 위해 제정한 가격통제법이었다. 워싱턴의 참패를 교훈 삼아 1778년 대륙 의회는 “재화 가격의 통제는 유효하지 않고, 공공서비스를 극도로 악화시키므로,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법령을 제정하지 말자”는 결의까지 했다.

경제는 법이나 명령으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환상에 빠질 때가 많다. 역대 정부가 매번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도 이런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전쟁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가. 시장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시장에 역행한 정책 실패가 더 큰 화(禍)를 자초한 역사적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우리 경제도 규제 실패의 비용을 만만치 않게 지불하고 있다. 크게는 1997년 외환위기도 시장에 역행한 환율정책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지 않은가. 펀더멘털(경제의 기본)이 튼튼하다며 시장을 외면하다 파국을 맞았기 때문이다. 최근 전세 파동도 누적된 부동산 규제의 부작용이라는 주장이 많다.

겨울 전력대란도 빼놓을 수 없는 가격 규제의 오류다. 문제의 핵심은 장기간 전기료를 원가 이하로 규제했기 때문이다. 10년간 등유는 두 배나 올랐지만 공기업의 전기료는 12%밖에 인상되지 않았다니 누가 연료를 전기로 대체하지 않겠는가. 전기를 만드는 유류보다 전기가 더 싼 아이러니가 어디 있는가.

값싼 전기로 인한 시장 왜곡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은 모든 산업에서 생산단위당 에너지 사용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락해 버렸다. 에너지 의존도는 높고 효율성은 낮으니, 유가가 상승할 때마다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싼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공기업 적자는 누가 보상해야 하나. 엉뚱한 세금으로 메워야 하니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다. 전력 부문의 경쟁과 민영화가 추진되었다면 이런 사태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물가에 개입한다면 최선의 정책은 역시 가격을 원가에 연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행여 가격담합이 있다면 불공정거래로 다스리고 규제완화와 신규진입, 유통구조의 개선을 통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원가가 폭등한다면 세율을 낮추고, 소외계층에는 제한적인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거시경제 안정정책이 중요하다

물가관리는 시장 개입보다는 거시경제의 안정정책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의 물가불안은 6% 성장을 외치며 금리인상을 머뭇거리던 작년 하반기부터 예고됐다. 게다가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고환율을 유지하니 수입물가가 어떻게 떨어지겠는가. 나아가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과 원자재 폭등까지 겹쳐 물가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5% 넘는 성장을 외치고 있으니 어디에서도 안정 기반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은 호들갑스럽게 물가관리를 외치며 기업을 압박하고, 대통령 말처럼 가격이 ‘묘한’ 품목을 찾기에 앞서 거시정책의 기조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과 안정을 번복하는 정책으로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는가. 주요 20개국(G20)의 국격을 내세우며 언제까지 1960년대식 물가관리를 지속할 것인가. 말 몇 마디로 물가를 잡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만하다.

정갑영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경제학 jeong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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