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정유업계 원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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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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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하고 나서 정부 부처들이 경쟁하듯 연일 정유업계 손보기에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통령 발언 당일 정유업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조사관들은 정유업체들을 방문해 휘발유 가격 자료를 복사해 갔다. 14일 긴급 소집된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서민물가와 직결되는 석유제품의 가격구조를 반드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18일에는 지식경제부가 주도하는 ‘민관합동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 첫 회의가 열렸다.

▷휘발유값의 50%가 유류세여서 정부가 세금을 내리지 않는 한 큰 폭의 가격 인하는 어렵다. 정부는 정작 세금을 낮출 생각은 안 하면서 시장가격의 44%를 차지하는 정유사의 공급가를 낮춰보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기름값이 뛰었다고 해도 대통령 발언을 신호탄으로 정유업계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

▷공정위는 정유업계의 내부 자료를 뒤져 기름값 담합 혐의를 찾아내고 싶겠지만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정교한 조사를 하고도 담합을 제대로 추궁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 공정위는 2000년 군납 휘발유, 2004년 경질유, 2008년 액화석유가스(LPG) 등 정유업계의 담합을 적발했다면서 총 66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과징금이 4000억 원을 넘었던 LPG 담합 건은 해당 5개사가 일제히 소송을 내 현재 진행 중이다.

▷공정위에서는 ‘정유업계가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가 일부 시민단체처럼 가격이 오르는 품목이나 돈을 많이 번 기업에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업계의 원가는 영업비밀처럼 존중돼야 한다. 마케팅과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더 큰 마진을 내려는 욕구는 시장(市場)의 동력이 된다. 지난 정부가 부동산값 폭등을 틈타 아파트 분양원가를 들춰보려 했지만 지금은 공공택지의 아파트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2009년 법제화된 수입품의 수입원가 공개제도는 지금껏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당장의 정책목표를 위해 시장원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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