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우정열]사랑도 조합장 선거도 꽁꽁 얼린 구제역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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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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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렬·산업부기자
우정렬·산업부기자
“매일 만나 알콩달콩 연애를 해도 모자랄 젊은 연인이 부모의 반대로 몇 주째 얼굴도 못 보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근 한 우유업체 관계자가 기자에게 들려준 연인 한 쌍의 안타까운 연애담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업체는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중순 본사 직원과 원유를 납품하는 목장주 자녀 등 20여 명이 함께 필리핀에 해외봉사를 다녀오는 행사를 마련했다. 마침 봉사단에는 양쪽 다 목장주 부모를 둔 20대 초반의 연인이 포함돼 있었다. 빈민촌에서 배식을 하는 힘든 봉사였지만 연인과 함께하는지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둘 다 봉사 활동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말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으로 일파만파 확산되자 외부인과의 접촉을 통한 바이러스 유입을 우려한 양가 부모들이 나서 자녀의 외출을 만류했다. 이들은 졸지에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 신세가 됐다는 것. 이 우유업체 관계자는 “이들은 몇 주째 전화와 인터넷 등으로만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구제역의 위세는 연인을 떼어 놓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다른 우유업체와 달리 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서울우유는 대표 역할을 하는 조합장을 2000여 명에 이르는 조합원(주로 목장주)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현 조합장의 임기가 올해 4월 끝나기 때문에 요즘 후임 조합장을 뽑기 위한 선거운동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지만 구제역이 맹위를 떨치면서 선거의 ‘선’자도 못 꺼내는 분위기다. 구제역 때문에 자식들이 들고 나는 것도 꺼릴 정도로 예민한 농장주들이 후보들의 접촉을 반길 리도 없지만 선거가 열려도 지역별로 설치될 투표소에 나와서 투표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선거는 고사하고 구제역과 사투 중인 조합원에게 본사 차원에서 석회가루나 방역복을 지원하고 직원들이 조를 짜서 방역 활동을 벌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다”며 “구제역 바이러스는 날이 추울수록 기승인데, 추위가 풀릴 기미가 안 보여 큰일”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우유업계는 각급 학교가 방학 중이어서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구제역이 더 확산돼 도살처분 젖소가 늘어나면 개학 후 공급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며칠간 구제역 신규 발생이 주춤하면서 가족 같은 가축을 도살처분하고 신음하는 축산농가에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모든 이를 위해 하루빨리 구제역이 사그라지길 바랄 뿐이다.

우정렬 산업부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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